한국은행은 3일 저성장.고물가 현상이 내년 상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등으로 인한 저성장.고물가 흐름이 올해안에 끝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부터 재정지출 확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내수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지출 확대에 나설 경우에 물가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추경이나 내년 예산 편성시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다.
◇ 고물가 지속된다
한은은 고물가.저성장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인 시기를 확정할 수 없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불안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유의 구조적인 공급부족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하반기보다는 다소 낮아질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기서 높은 수준이라는 뜻은 한은의 목표치인 3.5%를 넘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공공요금 조정이 올해 보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내년 물가불안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올해 상반기 물가가 하반기보다 낮은데 따른 기저 효과로 인해 내년 상반기 물가가 안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기전망과 관련해 그는 "내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이는 경기가 올해말이나 내년 상반기에 저점을 찍고 올라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성장률이 상반기에 크게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통화량 급증에 정부 지출도 한몫
과도한 시중 유동성도 물가 불안의 요인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물가가 크게 오르는 과정에서 수요 부문의 역할이 있었는지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연구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과잉유동성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등을 포함한 광의통화(M2. 평잔기준)는 4월 기준으로 작년 동월 대비 14.9%가 늘어났다. 지난 1999년 6월의 16.1% 이후 거의 9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이 같은 유동성 증가세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4월말 현재 광의유동성(L) 잔액 2천164조8천억원 가운데 국채 및 지방채 잔액은 136조8천억원으로 전체의 6%를 차지했다. 광의유동성 잔액 대비 국채.지방채 비중은 작년 같은 시기의 5%에서 1년 만에 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국채 잔액은 2000년 11조7천억원에 불과했으나 2002년 22조6천억원, 2003년 41조8천억원에 이어 2006년에는 100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작년 말 121조5천억원에서 지난 4월말 131조7천억원으로 늘어났다.
◇ "물가불안 소지..재정지출 신중해야"
원론적으로 재정지출이 늘면 총수요가 확대돼 물가가 더욱 올라간다. 물론 현재 인플레이션이 고유가 등 공급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총수요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이미 한계점을 훌쩍 넘긴 물가 상황을 감안하면 재정지출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지금은 워낙 경기가 안좋고 서민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계층에 대한 미시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감세도 하고 지출도 늘리면 총수요 압력을 키워 물가를 높일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세계잉여금을 지출하는 이번 추경에만 국한해 본다면 결과적으로 `재정 중립'을 취한 것이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향후 추가적인 재정지출에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고물가와 저성장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재정정책 밖에 없지만 이 또한 공공부문 가격동결이나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지원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정부의 재정지출이 결과적으로 물가에 부담을 준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은행대출이든, 정부지출이든, 시중에 풀려나오면 물가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경기 상황 등에 따라 영향을 주는 기간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의 다른 관계자는 "경기부진으로 총수요 압력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지출이 물가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내년에는 세수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재정지출에 따른 물가부담을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