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현대重 협공에 고객이탈 불가피
현대중공업그룹이 14일 CJ투자증권을 공식 인수함에 따라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범 현대가(家)가 계열분리 후 처음으로 '증권무대'에서 운명을 건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규모와 경험으로 무장한 현대증권이 우위에 있었지만 HMC투자증권과 CJ투자증권이 각각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후광을 업고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여 그동안 인수.합병(M&A)설에 시달려온 현대증권의 입지 위축이 어떤 형태로든 불가피할 전망이다.
◇ 현대중공업도 '출사표' = 14일 현대미포조선은 CJ투자증권 지분 75.08%와 CJ자산운용 지분 7.61%를 각각 7천50억원, 429억원에 취득한다고 밝혔다.
당초 현대중공업이 우선협상자로 CJ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미포조선을 통한 인수로 방향을 틀었다.
이로써 현대그룹,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범 현대가는 각각 현대증권, HMC투자증권, CJ투자증권을 보유하게 됐다.
3월 말 기준으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 20.17%를,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이 HMC증권 지분 29.83%를 갖고 있다.
◇ '혈투' 이미 돌입 = 그동안 현대증권의 텃밭으로 꼽혀온 울산에서는 이미 1차 혈투가 시작됐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조선, 자동차산업 등을 일으킨 곳이어서 울산은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에도 포기할 수 없는 고향이자 텃밭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이 다른 광역시보다 많은 10개의 지점을 둔 울산에 HMC투자증권이 이달 4일 3개 영업점을 동시에 개설했다. 당시 행사에 박정인 HMC투자증권 회장과 현지 기관장, 현대차그룹 계열사 대표들이 참석해 세를 과시하면서 출정식 분위기를 띄웠다.
HMC투자증권이 현대차그룹의 `정신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울산에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함에 따라 그동안 현대증권의 텃밭이었던 울산 시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HMC투자증권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됐음을 시장에 알리기도 했다. HMC투자증권에 그룹 전담팀이 꾸려졌으며 현대차그룹 HMC투자증권과 계열사들은 7조7천억원 규모의 금융거래를 시작했다.
여기에 울산을 텃밭으로 여기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울산에 지점을 신설할 경우 위탁매매 비중이 70%에 달하는 현대증권의 경우 고객 이탈이 불가피해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현대중공업 울산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는 유명하기 때문이다.
◇ HMCㆍCJ證 협공에 현대證 '사면초가' = 현대증권이 규모에서 압도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수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현대증권의 자기자본은 2조2천592억원, 임직원과 점포는 2천722명, 144개에 달한다. HMC투자증권과 CJ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1천688억원, 2천152억원, 점포수와 직원도 17개(임직원 323명), 53개(895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증권에는 우려가, HMC투자증권과 CJ투자증권에는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이미 그룹의 지원사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CJ투자증권은 자산운용사를 보유하고 있어 현대중공업그룹이 잘 키우기만 한다면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반면 현대증권은 확실한 대주주가 없어 향후 입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현대그룹이 최근 지분 3%를 취득키로 결정해 매각설이 다소 잠잠해졌지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결국 현대증권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점도 회사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증권의 역사나 규모를 볼 때 HMC나 CJ투자증권이 당장 경쟁상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이들 두 증권사의 등장이 현대증권에 위협적인 요인임에는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