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어려울 때마다 '부활'…손 안대고 코 푸는 격
원천징수 업무부담 늘어…수익률은 "별 영향 없어"
정부는 지난 25일 '2009년 세제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내년 세수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묘안을 제시했다. 한동안 면제돼왔던 금융기관의 채권이자 원천징수 제도를 부활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A기업이 은행에 채권을 발행하고, 100억원의 이자를 지급하는 경우 지금까지는 은행이 다음연도에 법인세를 신고할 때 100억원의 이자소득(금융기관은 사업소득에 해당)에 대해 법인세 세율(내년 20% 적용)을 곱해 20억원의 세금을 납부해왔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A법인이 은행에 채권이자 100억원을 줄 때 이자소득에 대한 원천징수 세액 14억원(14%, 주민세 미포함)을 떼어 내 관할 세무서에 납부하고, 나머지 86억원만 은행에 지급하게 된다. 이후 은행은 다음연도에 법인세를 신고할 때 이자소득에 대한 나머지 세금 6억원만 세무서에 내면 된다.
금융기관이 다음연도에 내야 할 20억원 중 원천징수에 해당하는 세액 14억원을 이자를 지급할 때마다 거둬 미리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후년에 거둘 세금을 내년에 거두기 때문에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으면서도 '5조2000억원'이라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일단, 내년 세수만 잘 확보하면, 내년에는 경제가 회복되면서 내후년 세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손 안 대고 코 푼다'말처럼 세금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자를 지급할 때마다 원천징수 세액을 떼어내야 하는 법인 등에서는 번거롭게 생겼다.
□ "재정위기에 부활하는 금융기관 원천징수"= 올해 정기국회에 이 같은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약 1년 반만에 금융기관의 채권이자 원천징수 제도가 부활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재정이 어려울 때마다 금융기관 채권이자 원천징수 제도가 부활돼왔다. 이렇게 원천징수 제도를 폐지했다가 부활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그 만큼 세수확보가 쉽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2005년 7월부터 금융기관의 채권이자 원천징수제도를 면제해, 원천징수·납부에 대한 업무부담을 줄이고, 수익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지만, 시행 반년만에 다시 되돌리는 것이다.
일반법인과 개인들의 이자소득은 원천징수되기 때문에 형평성을 고려해 금융기관의 채권이자도 원천징수를 해야한다는 이유로 2006년 1월부터 원천징수 제도가 시행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경제상황은 경제부처 수장이 공공연히 세수 걱정을 할 만큼, 지금처럼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작년 6월 1일부터 또 다시 금융기관의 채권이자 원천징수가 면제됐다. 일반법인과의 형평성을 운운하던 정부는 금융기관의 채권이자는 사업소득임을 감안해 원천징수에서 예외를 인정해 줘 납세절차를 간소화하고, 자금활용기회를 넓혀 채권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또 다시 1년여만에 정부는 내년부터 금융기관의 채권이자 원천징수를 부활하는 카드를 내민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 더 솔직해졌다는 것. 정부는 이런 방안에 대해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으면서 세수를 5조원 넘게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법인세·소득세 추가 인하 방안을 그대로 추진하는 대신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선택한 차선의 조치로 해석된다.
□ "정부가 정말 돈이 없긴 없나보네"= 금융기관의 채권이자에 대해 원천징수가 부활되더라도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스탠다드차터드 오석태 상무는 "근본적으로 2011년에 거둘 세금을 2010년에 거두기 때문에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큰 영향은 없다"며 "채권 시장은 대부분 외국인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원도 "원천징수 세액을 먼저 내기 때문에 그 만큼의 경과이자율 정도만 수익률에 변화가 있을 뿐 별다른 영향이 없다"며 "정부가 재정이 부족해 새로운 세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정부가 금융기관에 무이자로 돈을 꾸는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기관 채권이자 원천징수 제도가 부활과 폐지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25일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법무법인 광장 이미현 변호사는 "금융기관이 수령하는 채권이자 법인세 원천징수 제도가 부활됐다가 폐지됐다를 반복하고 있다"며 "채권이자를 지급할 때마다 일일이 원천징수를 하는 것은 업무상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라고 원천징수 제도가 부활하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변호사는 "개인에게 지급하는 이자는 탈세 위험이 있고, 세율도 다 달라 어쩔 수 없지만, 금융기관은 그런 면이 없는데 왜 사전에 원천징수를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채권시장을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역효과를 미치는 세제개편은 재고해야 한다"고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