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세법은 농지 소재지 인근에 사는 사람이 8년 이상 직접 경작한 농지를 내다 팔 경우 일정 한도 내에서 세금을(양도세)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세금감면을 받기 위해서는 기간요건 외 '직접경작요건'을 채워야 합니다. 농지를 8년 이상 소유했더라도 상시농작을 하지 않거나 농작업의 1/2 이상을 자기 노동력을 투입한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세금감면은 없습니다.
직접경작 요건은 세법상 아주 명쾌하지만 현실적 측면에서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근로소득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1/2 이상 자기 노동력을 투입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세관청에서는 직접경작 요건 충족여부를 의심, 세금감면을 안 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직업적 특성상 농사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있기 때문에 과세관청과 납세자간 다툼의 소지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납세자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런데 숨은 사연이 참 독특합니다. A씨가 거액의 세금을 두들겨 맞게 된 것은 국세청의 '부실조사'도 원인이 됐지만 '피'를 나눈 형의 말 한마디가 결정적(?) 근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100% 리얼(Real) '농업인' A씨= A씨는 지난 1996년 아버지로부터 농지를 증여 받은 뒤 농사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이후 지난 2005년 농지를 판 뒤 이듬해 5월 양도세 확정신고시 8년 이상 자경농지 양도세 감면에 해당된다며 감면세액을 뺀 670여만원의 양도세를 자진납부했습니다.
그러나 과세관청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양도소득세 조사결과 자경사실에 대한 객관적 입증자료가 없고, 자경 기간 중 근로소득이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며 감면을 배제, A씨에게 1억2700여만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농업에 투신했던 A씨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
문제가 된, 근로소득은 놀랍게도 자신의 형으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받았던 70∼80만원 가량의 '용돈'이었습니다. 이 돈이 부지불식간에 근로소득으로 둔갑되어 있었던 것이죠.
□ "막내 동생, 빌딩에서 청소원으로 일했다(?)"= 심판원에 따르면 A씨의 아버지는 소유하고 있던 빌딩을 맏아들 B씨의 아들(손자)에게 물려준 뒤 B씨에게 임대사업 운영을 맡기며 "막내 동생(A씨)에게 생활비를 대주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가뜩이나 A씨는 농사일만으로 가정을 꾸리기 빠듯한 처지였습니다. B씨는 아버지의 당부대로 막내 동생에게 한 달에 70∼80만원씩을 용돈 명목으로 주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용돈 명목으로 형으로부터 받은 돈이 갑자기 근로소득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B씨가 빌딩 임대사업과 관련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막내 동생인 A씨를 빌딩 청소원으로 고용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그동안 비용공제를 받아 왔던 것.
결과적으로 국세청 기록상 A씨는 어엿한 근로자였던 셈. 게다가 조사담당자가 A씨의 근무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자 B씨는 그 동안 부당 비용공제 사실이 적발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실제로 청소원으로 일했다"고 진술해 버렸던 것입니다.
암초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국세청 전산시스템상에 A씨가 개인택시업을 했다는 기록까지 나왔습니다. 과세관청은 또 A씨가 농업직불금 등을 수령한 사실이 없다는 점에 착안, 현장조사를 나가 인근 주민들로부터 "A씨가 이웃주민 아무개에게 부탁해 토지를 대리경작 했다"는 진술까지 받아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그러나 A씨는 이 난관(?)을 뚫고 세금부과 처분 취소라는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 억울함 풀어준 조세심판원, "세금부과 취소"= 조세심판원은 A씨가 제기한 심판청구에 대한 실질조사를 통해 과세관청의 세금부과를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실질조사 과정에서 "청소원으로 일했다"는 형의 진술과 "해당토지를 대리경작 했다"는 인근주민의 진술이 허위였다는 것, A씨가 자경 기간 중 개인택시업을 영위했다는 국세청 전산시스템 기록 또한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청구인이 제출한 각종 증빙자료(200가마 상당의 추곡수매약정서 등)에 따르면 A씨가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된다"며 "형으로부터 매달 일정액의 용돈을 받은 적이 있으나 청소일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막내 동생에게 아들 소유의 빌딩 청소를 시켰다는 형의 진술에 비해 신빙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판원은 이어 "A씨가 제출한 운전면허증은 택시운전면허가 아닌 2종 보통 면허로 개인택시업을 영위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국세청 전산시스템상 기록에는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심판원은 아울러 '대리경작자'로 지목된 이웃주민으로부터 "임차료는커녕, 농지 물꼬를 트거나 소유한 농기계로 수확기에 도움을 준 것일 뿐"이라는 진술을 받아낸 뒤 이를 토대로 조사공무원에게 진술을 했다는 인근주민에게 사실여부를 확인, "대리경작 했다고 진술한 적 없다. 농번기에 A씨와 같이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애초부터 조사공무원의 현장조사 자체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죠. 사실과 다른 진술을 '입맛'에 맞게 해석해, 과세근거로 써먹었던 셈.
심판원은 "본인 책임 하에 직접 농사를 지었다면 수확기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도 자경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며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농업에만 종사했다는 A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강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