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온스 당 1000달러를 훌쩍 뛰어넘으며 고공 행진을 거듭 중이다.
금값은 올해 첫 개장에서 온스 당 850달러로 시작했으나 지난 주 1,05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달러화 가치하락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2011년에 온스 당 1,650달러, 10년 내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예상도 나돈다.
금값은 지난 2001년에 온스 당 250달러였다.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가 되살아나고, 테러 등으로 세계가 날로 불안해지면서 값이 치솟는다고는 하지만 불과 7년 새 4배가 넘는 가격폭등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엇이 금값을 치솟게 만들고 있는가.
우선 수요공급 측면에서 보면 금의 공급은 빠듯하다. 세계적으로 새 금광 발견이 극히 부진한데다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을 잘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 금생산은 2,444톤으로 전년에 비해 1%가 줄었고 2008년에 다시 88톤이 줄어 3년 연속 감소세다.
금 공급은 신규 채광생산이 64%, 공적보유 금 매각이 13%, 기존 금붙이들을 녹여 공급하는 스크랩 몫이 23%다.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귀금속 연구 및 컨설팅의 세계적 권위 GFMS는 내년까지 신규 증산량은 많아야 250톤에 그칠 것으로 예측한다.
게다가 중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세계 제1위의 금생산국이 되면서 세계금시장의 권력중심도 아시아로 이동 중이다.
100년 이상 금 생산 1위를 도맡아온 남아프리카는 지난해 생산량이 8%가 줄어든 반면 중국은 12%가 늘었다. 호주도 5%가 늘면서 미국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증산이 두드러진다.
반면 수요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아직도 63%가 보석용이고 투자는 12%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이 비싸지면서 보석용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투자는 신용위기와 미국 금리인하 고원유가 상품투자 붐 등이 겹치면서 크게 느는 추세다.
보석용 수요는 2008년에 11%가 줄어들면서 1989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중 13.8%가 다시 줄었고 대신 약한 달러에 대한 대체투자수단으로 투자용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금본위제가 무너지고 달러중심의 국제통화체제 속에서 금의 존재는 ‘달러 스토리’의 곁가지로 전락했고 그 역할 또한 경제 금융 정치 불안에 대한 위험회피수단이 고작이었다. 이런 금이 이제 그 고유의 동력(dynamics)을 지닌 상품통화(commodity currency)로 거듭나고 있다는 얘기다.
금은 갖고 있어야 이자 한 푼 붙지 않지만 제로금리의 현 상황에서 금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금괴를 사 장롱 속에 넣어두는 일은 이젠 옛말이다.
중동에서부터 인도 중국 등에서 금 선물시장이 다투어 개설되면서 일반투자가들의 선물투자가 활기를 띄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물시장은 개인들이 아닌 프로의 영역이었다.
주식 및 채권시장과의 상호연관성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GFMS는 금의 새 패러다임으로 이를 설명한다. 경제가 불안하고 위협이 닥칠 때 이득을 취하는 수단이 아니라 경제가 잘 나가고 번영할 때도 아낌과 선택을 받는 저장 및 투자수단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 중국에서는 저축수단으로 금선호가 전통적으로 매우 강하고, 인도와 여타 아시아권 국가 개인들도 소득이 늘어나면서 금으로 된 보석과 금괴 구입을 늘려 아시아가 금시장의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금의 공급과 수요, 그리고 그 축의 중심이동 등 금의 역학과 게임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최근 걸프만안 산유국들이 중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과 함께 원유결제통화를 달러 이외의 통화로 바꾸기 위한 비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금값에 불을 질렀다.
원유대금 결제통화를 유로와 일본 엔, 중국 위안화, 금,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부다비 카타르 4개국 새 단일통화로 구성된 바스켓통화로 대체키로 하되 그 경과기간 동안 금을 잠정통화(transitional currency)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브라질과 인도도 이에 적극 동조할 기세다. 러시아는 루블화를 이 바스켓에 끼어 넣으려 벌써부터 안간힘이다.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또 하나의 경제전쟁 가능성도 우려된다. 유로 출범당시 미국은 영국이 유로통화권에 가담하지 않도록 강하게 설득했었다.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이 원유결제를 유로화로 바꾼다고 선언한 지 몇 달 후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었다. 경제전쟁 여부는 지켜 볼 일이지만 달러가 제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한 통화안전판으로서 각국 정부의 금 매입 러시와 이에 따른 금값 강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가격으로 따지면 현재의 금값은 아직도 싼 편이며 1980년 가격을 구매력평가로 환산하면 온스 당 3,500달러는 되어야한다는 계산도 나돈다.
우리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1988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운동으로 모인 금 가운데 3.04톤을 산 뒤 11년 동안 거의 금을 사지 않았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6위지만 금보유량은 세계 56위(14.4톤)로 최하위수준이다. 무수익자산인 데다 위기 때 현금화할 경우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은 1,054톤을 보유하면서도 계속 이를 늘려가고 있다.
시중 백화점들이 금 매입 행사에 나서고, 장롱 속 금붙이들을 팔러 나온 사람들로 금은방이 붐비기 시작하는 등 바야흐로 금값의 황금기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