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경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출증대 →고용유발, 수출증대→ 내수진작의 연결고리는 2005년부터 눈에 띄게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지난 5년간 국내 상장기업들의 매출은 24%가 늘었지만 고용한 직원 수는 2%가 줄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2006년 1월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당시 노무현대통령에게 일자리창출을 위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대통령이 "내가 여태 보고받은 것 가운데 가장 잘된 보고서"라고 극찬을 했다는 기억도 새롭다.
내수 및 서비스산업의 고용흡수력을 높여 수출-투자위주의 양적 성장전략의 한계를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정책 권고였다.그러나 로드맵만 거창했을 뿐 구체적인 실천전략과 정책이 뒤따르지 못했다.
투자를 독려하던 정권과 투자의 주체인 재계는 내내 갈등관계였고 대기업들은 고용창출을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아 '자본파업'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이를 기회로 잡은 대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대기업, 그리고 충격으로 휘청대는 중소기업 간에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이는 소득 및 고용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글로벌 일류기업 몇 개만 있으면 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어느 재벌총수는 호언을 했다지만 '장수만 있고 이들을 뒤받치는 병사들이 부실한' 국가경제가 제대로 힘을 쓸 리 만무다.
지난해 한국의 공식실업률은 3.6%였다. 전년에 비해 0.4%포인트 높아졌지만 오히려 2005년(3.7%)보다도 낮게 나왔다. 실업률 3%대는 거의 완전고용수준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자와 직장 구하기를 아예 단념한 사람, 그리고 주당 18시간미만 일하는 불완전 취업자들을 합친 '사실상 실업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5세 이상 인구를 4천만 명으로 보면 인구 10명중 1명은 사실상 '백수'라는 얘기다.
한국의 실제 실업률을 18%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업률이 두 자리 숫자(10%이상)이면 선진국에선 실업대란으로 간주한다. 게다가 한국의 취업자 10명 가운데 1명은 임금이 기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제회복이 가장 빠른 나라, 수출액 세계 9위, 반도체 휴대폰 액정TV 조선 철강 자동차 산업의 약진 등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한국경제의 일그러진 얼굴이다.
원래 고용은 후행적 성격을 가져 경기가 회복되어도 고용이 바로 뒤따라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고용 없는 성장은 이런 시차를 넘어 우리경제의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동안 우리경제의 성장은 수출이 내수 및 투자를 자극하여 전체성장을 이끄는 수출주도형 성장이었다. 그러나 1993년을 정점으로 수출의 부가가치유발효과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수출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내수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과거 국내고용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던 가전 섬유 컴퓨터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해외이전이 가속화되고, 조립·완성재 산업에 기술집약적 투자가 확대되면서 제조업의 고용창출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산업이 수출을 주도하고 핵심부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수출이 늘어도 국내 연관산업에 파급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중소기업 중심의 고부가가치 핵심부품소재산업의 뒷받침 없이 대기업 중심의 가공 조립위주의 성장에 주력해 온 업보다. 게다가 생산자동화와 사무자동화 등 IT화의 진전으로 산출증대가 바로 고용유발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국내 주요기업들이 최근 들어 고용을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 국내 10대그룹의 고용은 5년째 제자리걸음 상태다. 해외생산비중이 국내생산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고, 분사와 아웃소싱을 통해 일자리 만드는 부담을 중소기업에 떠넘겨 대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많지 않다.
전체고용인원 가운데 대기업고용자수는 12.5%에 불과하고 나머지 87.5%가 중소기업들이 고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를 늘리려면 중소기업의 고용창출에 정책역량을 집중시켜야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대기업위주였다. 규제완화와 감세 등 비즈니스프렌들리로 유인을 주면 대기업들이 적극 투자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투자와 일자리 만들기보다는 현금유동성 확보에 치중했다.
지난해 재계단체와 주요 대기업들이 '일자리 10% 늘리기'를 공언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주 30대그룹 총수들이 올해 투자를 16.3% 신규채용을 8.7%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상당부분이 해외 몫이고, 채용규모가 2008년보다 적거나 일부는 발표에 쫓겨 신규채용규모를 급하게 늘려 잡은 인상 또한 없지 않았다.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려면 고용흡수력이 강한 중소기업과 내수부문 활성화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한다. 지금까지 생산성이 낮았던 내수 및 서비스산업부문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고용을 늘리고 수출도 뒷받침하며 경제전체의 효율성을 높여나가는 일이다.
대기업 의존적 중소기업보다, 신기술을 선도하고 특화된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독립형 중소기업들을 중점 지원하고, 금융 유통 디자인 등 비즈니스서비스업을 육성해 제조업과의 연계성도 높여 나가야한다. 의료 보건 교육 문화 및 오락 등 고임금 일자리를 보장하고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지식집약분야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서비스산업은 자본투입 대비 일자리 창출효과가 건설업보다 높다. 4대강 같은 토목사업보다 공공성이 강한 사회서비스사업부문에 재정을 중점 투입해야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희망근로나 청년인턴제는 근본해법이 아닌 임시방편이다. 고용통계에서 제외됐던 비정규직을 고용통계로 잡아 일자리를 늘리는 일은 '꼼수'다.
대기업과 하드웨어 기반만으로는 일자리창출이 한계에 부닥친 현실에서 정부의 정책기조도 달라져야한다. 정부는 곧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처음으로 개최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 총력전을 편다고 한다.
수출·고용 동반확대전략과 서비스산업선진화 추진계획도 이달 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자리 창출과 동반성장'을 위한 참여정부의 로드맵을 연상케 한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는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