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장부 작성' 따른 인력·시간 손실 등 부작용 노출
정부의 시책에 편승해 국제회계기준, 즉 IFRS를 조기 도입한 기업들이 법인세 신고 마감을 앞두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세법이 개정되지 않아 기존 회계기준(K-GAAP)에 맞게 별도로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지난해 IFRS를 조기 도입한 곳은 ▲KT&G ▲STX팬오션 ▲풀무원홀딩스 ▲이건산업 ▲페이퍼코리아 ▲코스모화학 ▲영진약품 ▲인선이엔티 ▲다스텍 ▲에코에너지홀딩스 ▲디스플레이테크 ▲한국큐빅 ▲국제일렉트릭코리아 ▲지코앤루티즈 등 14개 기업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이들 업체에게 "2009 사업연도 법인세 신고 시 기존 K-GAAP에 따라 작성한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법인세 과세표준과 세액을 계산해 신고하고, 해당 신고서에 이 제무제표를 첨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해당 기업들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
다른 기업보다 먼저 IFRS를 도입한 결과 장부를 두 번 작성하는 부담만 지게 됐기 때문이다. "과세 형평성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당국은 설명했지만, 정부의 늑장 세법개정으로 기업들의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늘면서 업체 관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한 업체의 회계 담당자는 "IFRS든 K-GAAP이든 원래 세무조정만 하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장부를 만드는 부담도 지고 있다"며 "여기에 추가로 들어가는 인력과 시간 등 손실이 만만치 않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소규모 회사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자회사 등을 거느린 기업들은 부담이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시간은 없는데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등의 실적까지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돼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법인세신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재정부 관계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국제회계기준TF 회의 자리에서다. 이날 회의에는 IFRS를 도입했거나 올해 도입할 예정인 기업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동석했던 재정부 관계자에게서 '신속하게 작업을 해 2010년 중 세법을 개정하겠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를 전해들은 업체 담당자들은 "사전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애를 먹이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느냐"는 반응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법인세 신고 시 기존 방식에 따라 재무제표를 내라는 기준 등을 제거해줄 경우 IFRS와 K-GAAP 간의 차이만 세무조정에 반영하면 돼 '이중장부 작성'에 들어가는 기업들의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내년에 상장업체를 대상으로 IFRS가 전면 시행될 때까지 기업이 IFRS와 K-GAAP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 IFRS를 도입하는 기업까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IFRS 도입 예정인 기업 관계자는 "작년엔 IFRS를 도입한 회사가 14개밖에 안 됐지만 올해는 다르다"며 "삼성 등 대기업들도 포함돼있지 않느냐. 빨리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비록 한시적이라고는 하나 회계기준 선택의 자유를 준다면 정부가 예상하는 것과 실제 세수 간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정부 당국이 조속한 해결 방안을 내놓는 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