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원인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한반도가 졸지에 심각한 긴장에 휩싸였다.
우리 측의 단호한 대응에 북한 측이 '전면전'을 입에 올리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새로운 전쟁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따끔하게 본때를 보이는 묘수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다.
다시는 도발을 못하도록 제재조치가 충분히 강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유발할 정도로 너무 세어서도 안 된다는 데 '천안함 외교'의 고민이 있다.
대북 대응조치는 한국의 독자적 조치, 한·미 동맹차원의 합동조치, 유엔 안보리를 통한 국제제재의 3단계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그 수단과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래 서방세계의 제재를 줄곧 받아왔고, 최근 두 차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로부터 중첩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제재 한 둘을 추가한다고 북한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돈줄과 방북 길을 차단한 이명박 대통령의 '고강도' 대응조치는 북한에 상당한 고통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떠안아야 할 안보 및 경제적 비용 또한 결코 만만치가 않다.
남·북교역은 북한무역의 최대 38%,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점하고 있고 북한은 남·북교역을 통해 얻은 달러를 기초로 북·중무역을 확대해 왔다. 따라서 남·북교역 중단은 한국으로부터 경화(硬貨)수입 중단→ 중국과의 결제수단 부족 → 대중수입능력 약화 → 북·중무역 정체 →타 국가로의 거래이전 애로 → 전체 교역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만약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면 한·중 두 나라가 북한 대외거래의 80% 이상, GDP의 35%를 차지해 그 파괴력은 결정적이다. 반대로 중국이 고립무원상태의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경우 한국의 대북제재효과는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한국의 독자적 경제제재가 효과를 거두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국제적 제재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21개국이 북한을 규탄하고 제재에 동참을 표명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설득 없이는 문제제기만 하고 외교적 시도로 끝날 우려도 적지 않다. 중국이 기권한 채 북한을 규탄하는 안보리의장 성명 채택 정도라면 차라리 시도 않는 편이 낫다.
반면 남·북 간 국지적 충돌가능성, 도발과 보복의 악순환, 이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과 경제적 악영향, 민항기의 북측 영공 우회비행, 한·미합동해상훈련에 따른 중국과의 긴장조성 등 우리가 치러야 할 물질적·정신적 안보비용은 돈으로 따지기 힘들 정도다. '햇볕'을 거둬치우고, 남·북관계를 사실상 2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꼴이다.
이에 따른 비용과 불편 고통은 우리의 국가안보를 위한 최저한도의 비용으로 각오한다 해도 문제는 앞으로다.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려면 우리의 독자적 대북응징과 국내의 안보태세강화,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입체적으로 시너지효과를 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고도의 외교적 노력은 물론이고, 중장기적인 남북관계 포석, 그리고 '남남갈등'으로 상징되는 국내 상황 관리, 즉 내치(內治)가 뒷받침 되어야한다. 통치력과 외교력 등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실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천안함 침몰의 국제이슈화는 당사국인 한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동맹국인 미국과는 '찰떡공조'를 과시하고 있지만 내용면에서 미국은 한국입장을 전폭 지지하고 필요한 협력을 다짐할 뿐 앞장을 서지는 않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공격당한 것은 한국 군함이다. 따라서 그 대응은 한국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천안함사건이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미국이 원치 않고 있고, 민간인이 공격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을 테러국가로 재지정하는 것도 주저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대북제재를 위한 중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베이징에서 '외교적 투쟁'을 불사했지만 중국은 '대결보다는 대화, 당사국들의 냉정한 자제'를 거듭 촉구했다.
천안함사건과 6자회담 재개는 별개사안이라는 입장 또한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중국 주도의 6자회담 재개를 통한 북한핵문제해결에 집착이 커 '선(先) 천안함, 후(後) 6자회담'이라는 한국 측 요구를 선뜻 수용하기를 주저하는 눈치다.
천안함 외교의 성패는 중국을 우리가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국적 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소행임을 밝혀냈는데도 천안함 침몰사건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점을 중국이 여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정부가 반성할 대목이다.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중간지대에 위치토록 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럼에도 MB(이명박)외교는 한국이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한미동맹의 복원에만 공을 들였고,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에서 비롯된 역사적 산물'이란 핀잔을 중국으로부터 들을 정도였다.
북·중 특수관계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중국은 언필칭(言必稱)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다.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해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제공하고,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천안함사건은 이를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천안함 외교가 힘을 받으려면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국론이 결집되어야한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제기됐던 각종 의문과 의혹을 조속히 수습하고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독자적 대북제재가 남·북관계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한 남·북관계 장기구상도 차제에 마련해야 한다.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고 축소운영형태로 남겨둔 것은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전략과 큰 그림이 없는 제재는 제재를 위한 제재일 뿐이다. 반북 대 친북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도실용정부의 참모습을 보일 때다.
대북 제재와 압박만으로 몰아붙일 경우 북한은 제3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새로운 도발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북한이 고립되고 어려움에 빠질수록 중국의존도는 높아진다. 북한을 응징하려다 북한을 중국에 넘겨주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
안이한 국민의식을 탓하기에 앞서 이명박 정부 스스로 대북정책 실패와 안보무능을 되짚어보는 숙연함부터 보여야한다. 제재에도 시나리오가 있는 법이다. 장기전략 없이 응징수단들(tactics)이 난무할 때만큼 위험한 국면도 없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