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3일 개최하기로 예정했던 '제3차 복지TF 회의'를 돌연 취소했습니다.
당초 정치권이 쏟아낸 복지공약을 검토·분석해 유권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큰소리치던 재정부가 총선을 1주일 앞둔 시점에서 '개점휴업'을 선언한 것입니다.
회의 취소 배경에는 선거바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선거 개입을 우려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재정부 측에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지TF 회의를 선거 이후로 연기해달라는 뜻을 전했고, 재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는 후문입니다.
재정부는 이미 지난 2월 제1차 복지TF 회의를 열어 정치권이 당시 발표했던 복지공약을 실현하는 데 연평균 67조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고, 최근까지 각 정당별로 추가 발표한 복지공약에 투입될 소요액까지 힘들게 추정·계산을 마친 상태입니다.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권이 내놓은 무차별 복지공약의 허구성을 알려, 對정치권 '압박카드'로 활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지TF는 무장해제당했고, 재정부는 정치권의 복지공약의 허구성(?)을 알면서도 국민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신세가 된 것입니다.
재정부는 복지TF 회의를 총선 이전에 비밀리에 비공개로 개최하거나 선거가 끝난 뒤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선거결과가 나온 이후 이야기한들 무소용일 뿐이며 정치권의 심기만 건드릴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복지TF가 만들어낸 카드는 '무용지물'이 됐지만, 재정부는 정치권의 행보를 비판하는 내용의 자료들을 무더기로 쏟아내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회의 취소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이날 예산실을 통해 뜬금없이 영국 정부의 올해 예산안을 분석한 '2012년도 영국 예산안 주요내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총선 이전까지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정부정책 발표를 자제하겠다고 선언한 재정부가 그동안 작성했던 통계나 해외동향 자료 등을 기자들의 '먹거리'로 내놓고 있는 것인데요, 자료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도가 뻔합니다.
이날 내놓은 보고서도 영국 정부의 전반적인 예산 기조와 세입·세출 규모 등을 소개하는 내용. 일반국민들이 저 멀리 바다 건너 영국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얼마나 궁금해하는지는 몰라도 재정부는 열심히 설명자료를 곁들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각종 재정절감 정책을 실시할 예정이며, 법인세·소득세율 인하와 아동보조금을 비롯한 복지정책 축소에 초점을 맞출 방침이라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법인·소득세 증세와 각종 복지정책 확대를 영국 정부의 실례를 들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이어 재정부는 미국, 독일, 스위스 등 주요 선진국 세율까지 소개하며 국제적인 감세기조에 반하는 증세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정치권을 비난했고, 무분별한 복지 공약은 철회해야 한다는 뜻까지 첨언했습니다.
지난주에도 재정부는 '지속가능성의 세계적 의미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인기영합적 복지정책을 남발한 대부분 국가들이 재정악화 등 국가 위기에 빠졌다고 강조했습니다.
재정관리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고 있는 재정부 입장에서는 정치권이 벌이고 있는 광란의 질주를 보고만 앉아 있는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정치권에 맞서 정부의 정책기조를 지켜내는 것은 재정부의 기본임무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도 재정부가 정치권 비판용 자료들을 쏟아내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왠지 서글퍼 보이는 구석이 많습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선거판의 대세가 복지를 정점으로 한 정책대결이 아닌 민간인 사찰 의혹 등 정쟁에 휩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정부의 노력은 아마도 선거 유세차량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총선 후보자들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깊게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