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보다는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해서 세입을 확충하겠다."
지난해부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세제당국 고위 관계자들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한 말이다. 지난 연말 정치권이 선거철을 앞두고 복지 확충을 위해 '증세'를 하겠다고 나서자, 경제발전에 역주행하는 정책이라면서 꺼내든 핵심적인 반대논리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그동안 소득세나 법인세 등 직접세 세율을 높여서 개인이나 기업의 의욕을 꺾기보다는, 기존의 세금감면 혜택을 줄여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불과 한 해도 지나지 않는 현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이런 말들이 점차 '공염불'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줄곧 '균형재정'을 외치면서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겠다던 정부가 최근엔 오히려 추가적인 세금감면 대책을 제시하는 등 '지갑'을 더 열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감면 규모가 '조' 단위를 넘어가는 굵직굵직한 감면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상당한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비과세·감면제도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
작년 한해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로 소요된 재정은 30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해 예산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정부는 이 부분을 대폭 정비해서 소득·법인세 증세를 대신한 상당분의 추가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세법개정안 공식 발표일이 불과 3달도 남지 않은 현재, 앞길이 깜깜한 상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조세지출예산서 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말로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 감면제도는 총 90여개. 이 제도들로 인해 올해 소요되는 세수 감소분은 구체적인 추정이 곤란하거나 효과가 미미한 제도들은 제외하고 약 7조38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세액감면 규모가 큰 제도가 있다.
자경농지·축사용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1조4472억원), R&D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2조5994억원), 신용카드 등 사용에 따른 부가세 면세(1조2817억원) 제도들은 연간 세금감면 규모가 '조'단위를 넘어선다.
또 농협 등 조합법인에 대한 법인세 과세특례(3594억원), 도시철도 건설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영세율(2164억원), 공익사업용 토지 등에 대한 양도세 감면(3959억원), 장기주택마련 등에 대한 소득공제(1206억원), 택시 LPG 개별소비세 면제(1019억원) 등도 감면규모가 상당하다.
문제는 덩어리가 큰 감면제도 가운데 상당부분은 일몰을 연장하겠다고 이미 발표했고, 경기부양 등 여러 가지 정책적 목표에 의해 또 다른 덩치 큰 감면제도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미 '스몰볼' 대책이라는 명목의 소규모 경기부양책을 통해 감면규모가 올해 2조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R&D 세액공제 제도를 그대로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전에도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R&D 관련 비과세 분야를 확대하는 등 추가적인 세금감면 카드를 꺼내들었다.
또 가장 최근에는 고유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기름소비 절감 대책의 일환으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에 대한 신용카드 사용분에 대해 추가로 1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를 통해 소요되는 금액은 연간 1000∼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어떤 제도를 얼마만큼 줄이고 정비하겠다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덩치 큰 감면제도는 별다른 개선방안 없이 연장되고 있으며, 추가적인 세금감면 제도만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정부, 여당이 한목소리를 냈던 '대대적인' 비과세·감면제도 정비는 고사하고 새로운 감면제도만 덧칠되고 있다.
조세감면제도의 특성상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없애기 상당히 어렵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정부 뜻대로 원하는 시기에 단칼에 무 자르듯 없애기 힘들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나 농어업용 면세유등 여론의 반발에 직면하거나 FTA 등 정부 정책을 위해 불가피하게 일몰을 연장시킨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수차례 바꾸고자 했던 임시투자세액공제도 지난해 고용창출공제제도로 전환되는데 만 30년이 걸렸고 이 조차 원안대로 결정되지도 못했다.
그만큼 한번 준 세제혜택을 회수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목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부분을 인식하면서도 올해 세법개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사실상 방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살펴보고 있지만 (정비대상 제도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세연구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수확보 차원에서 무엇보다 탈세·탈루 방지대책을 통해 숨겨진 세원을 발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며, 비과세감면 정비나 세율정비 등의 후속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재정건전성 측면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제한적으로라도 적정수준의 조세감면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조세지출 총액한도제' 등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