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필립스전자 불공정 행위 과징금 15억원 부과
대리점 할인판매금지 강요, 일부 제품 인터넷 판매금지
인기리에 판매 중인 필립스 센소터치 전자면도기를 한동안 인터넷쇼핑몰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필립스 본사 차원에서 시중 대리점에게 제품을 인터넷쇼핑몰에 공급하지 말라고 '압박'을 넣었기 때문이다.
필립스는 또 인터넷쇼핑몰에 제품을 납품하는 대리점에게 일정 가격 이하로 팔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지키도록 강요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소형가전제품 대표 브랜드 필립스가 이 같은 불공정 행위를 일삼아 오다가 경쟁당국으로부터 과징금 등 재제조치를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4일 (주)필립스전자가 대리점에게 11번가, 옥션 등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거래되는 소형가전 제품의 최저 판매가격을 미리 정해주고, 이 가격 아래로 팔지 못하도록 강제한 행위 등을 적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5억13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국내 소형가전 시장규모는 약 3000억원 정도로, 필립스는 전기면도기(61.5%), 음파전동칫솔(57.1%), 전기다리미(45.2%), 커피메이커(31.3%), 음식제조 가전(28.4%)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필립스는 최근 가격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이후 한·EU FTA가 발표됨에 따라 유럽산 소형가전 제품에 대한 관세(8%)가 전면 철폐돼 보다 싼 값에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결과 필립스는 인터넷쇼핑몰 등에 최저 납품가격을 미리 설정해 주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지 못하도록 물밑 '교통정리'를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필립스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온라인 시장 할인판매를 막기 위한 TF를 구성, 수차례 회의를 거쳐 온라인 시장의 할인판매 통제방식 및 오픈마켓 등 유통채널별로 가격경쟁을 차단하는 방안을 모색한 뒤, 이를 실행에 옮겼다.
특히 FTA 발효를 목전에 둔 지난해 5월부터는 "필립스가 판매하는 소형가전 전 제품을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권장소비자가격 대비 50% 이상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판매 대리점들을 압박했다.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대리점에 대해선 출고정지, 공급가격인상, 전량구매요청 등 불이익을 부과했으며, 저가 판매제품 유통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제품 포장박스에 대리점 별로 '마킹'까지 해 두는 치밀함까지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제품들은 인터넷에서 아예 판매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공정위 조사결과 필립스는 지난해 3월부터 센소터치(전기면도기), 소닉케어(음파전동칫솔), 세코(커피메이커), 도킹스피커(휴대폰 등 스피커) 등 4개 제품에 대한 인터넷 오픈마켓 판매금지정책을 수립한 뒤, 각 대리점에 이를 위반할 경우 출고정지 등 제재조치를 내리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7월부터는 일명 '공기튀김기'로 불리는 에어프라이기도 판매 금지대상에 추가시켰다.
필립스의 이 같은 행위는 사실상 '담합'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신영선 시장감시국장은 "필립스의 재판매 가격유지 행위와 오픈마켓판매 금지행위는 대리점 또는 유통채널 간 가격할인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담합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며 "특히 온라인 판매금지행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직접 차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유통과정, 특히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불공정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강화하고, 위법행위 적발 시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에서 FTA 관세인하 제품과 관련된 제재조치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향후 FTA로 관세가 인하된 품목이 시장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일부 제품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조치가 이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이번에 제재조치를 받은 전동칫솔 등 유럽산 소형가전제품을 포함해 맥주, 위스키를 FTA 관세인하 혜택을 체감할 수 없는 품목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신중한 입장이다. 신 국장은 "제품 가격이 낮아지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모니터링 결과와 제보 등을 취합해 혐의가 명백히 드러날 경우에 한해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필립스는 공정위의 시정권고를 받아들여 지난 5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제품 판매를 허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