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효과적인 행정부의 감시자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지원조직이 따라 붙는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지원조직이 바로 예산정책처다.
'돈(예산)'의 흐름을 감시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연간 300조원이 넘는 나라살림을 날카롭게 분석, 국민의 혈세(血稅)가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척후'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지원조직의 역할보다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내에 많은 경제연구기관이 있지만, 행정부의 예산운용 및 예산사업, 경제정책 운용을 체계적으로 뜯어본 뒤 문제점을 파악해 '견제구'를 던지는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예산정책처가 유일무이하다.
예산정책처는 총 4개 실·국(▲예산분석실 ▲경제분석실 ▲사업평가국 ▲기획관리관) 16과(課) 2담당관, 정원 125명으로 구성된 조직. 각 실·국마다 주어진 업무영역이 있으며, 과장 조금 보태어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두뇌집단'이다.
하지만 예산정책처는 '입'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대내외에 존재감이 덜 부각된 측면도 크다. 그러나 예산정책처는 결코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입이 아닌,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보고서'로 세상과 소통하는 예산정책처가 생산한 보고서는 곧 감시자를 자처하는 언론사 및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강력한 '힘'을 갖는다.
◆ 행정부 간담 서늘케 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 '수두룩'
지난 2010년 6월17일 오전. 홍동호 당시 기획재정부 재정정책국장(現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이 급히 과천정부청사 재정부 기자실로 달려왔다.
홍 국장은 "우리나라 재정통계 신뢰성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전날 국회예산정책처가 배포한 '외평기금 이자비용 처리 문제로 본 통합재정통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가 만든 파장이다.
이 보고서를 통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통계매뉴얼 기준과 달리 2009년 갑자기 통합재정수지에 외평기금 이자수입을 포함시켜 재정적자가 4조4000억원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국가통계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여지를 남겨둔 지적이었다. 재정부가 이에 발끈,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것. 하지만 재정부의 입장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돌변했다. 이날 오후 홍 국장이 다시 기자실을 찾아와 "국회의 지적을 고려해 재정통계 작성 기준과 절차 등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11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0년 정부 예산안 분석' 보고서는 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예산 4조원 감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주목을 받았지만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예산문제를 지적하여 논란이 일었다.
이에 앞서 2009년 4월,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29조원 규모의 '슈퍼 추경(추가경정예산)'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국회예산정책처다. 정부는 슈퍼 추경을 통해 경제성장률 1.5%p 증가를 주장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0.8%p를 예측했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 재정 확대가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의 저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재정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첨부, 재정부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보고서를 통해 행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만큼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질과 양 측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행정부도 이제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촉각을 잔뜩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매년 국회 예·결산 심사과정 등에서 국회예산정책처가 만들어낸 보고서는 국회의원들의 손에 들려져 강력한 '무기'로 활용이 되고 있다. 과거 행정부가 전문성이 부족한 국회를 상대로 수월한 예·결산 심사를 받았던 시절은 이미 옛일이 됐다.
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국회의원들의 대행정부 상대 질의의 근거가 되며 법적 효력보다 더욱 큰 심리적 압박감을 행정부에게 심어주고 있다.
◆ 50년 후 대한민국 재정에 '경고음'을 실어보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보고서들은 기본적으로 '숫자'를 바탕으로 한다.
즉, 숫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하품' 나오는 자료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제는 숫자다. 숫자와 연관된 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하품이 아닌 눈과 입이 번쩍 할만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당장 오늘과 아주 가까운 내일의 대한민국 재정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앞으로 먼 내일의 대한민국 재정의 지향점을 미리 가늠해보는 일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일을 국회예산정책처가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2∼2060년 장기 재정전망 및 분석 보고서를 통해 대한민국 재정의 미래 지향점을 적시에 제시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모태가 된 미국의 CBO(의회예산처) 등의 경우 장기 재정전망을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하고 있으며, 국회예산정책처는 미래의 거시경제 및 재정을 체계적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국내 최초로 발간, 행정부는 물론 언론과 학계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보고서에 담긴 문제적 발상도 발상이지만 미구에 닥칠 미래에 대한 대비점을 현 시점에서 깊게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구석이 많다.
특히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재정구조가 아무 개선 없이 2060년까지 유지될 경우 현재 20대 대학생들은 평생 동안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보다 약 3억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며 젊은 세대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된 현행 재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냈다.
아울러 19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복지정책들이 향후 국가재정에 커다란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아무런 추가적 복지지출을 상정하지 않았음에도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추가적인 복지제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초고령사회가 되고 나면 재정은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며 "현재의 재정구조는 고령화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으며"빠른 시일 내에 지속가능한 재정구조로 고치고 불공평한 현재의 세대간 재정부담 구조를 형평성 있게 고쳐야 한다"고 분명한 '경고음'을 보냈다.
지난 6월말 대내외에 공개된 이 보고서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관심만큼이나 국회예산정책처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행정부를 비롯해 국내 어떤 경제관련 연구기관에서도 선뜻 시도하지 못했던 금자탑을 국회예산정책처의 '힘'만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단순히 국회 산하 연구기관이라는 제한적 역할에만 만족했다면 이런 보고서의 생산을 기대하기는 만무한 일.
국회예산정책처의 지향점, 즉 '나라살림 지킴이, 나라정책 길잡이'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기 때문에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과 귀는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획취재팀 : 최종건 정치팀장, 유엄식·이희정·김기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