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4일 서울시 왕십리 민자 역사 비트플렉스 앞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궂은 날씨 속에도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계적인 게임업체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10년 이상 공들여 제작한 '디아블로3'의 한정판을 소장하기 위해 국내 게임 유저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지난 2000년 여름 발매된 '디아블로2'가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렸을 정도로 국내외 게임 유저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작 게임.
12년 만에 새로 출시된 디아블로3에 대한 게임 팬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서비스가 시작된 발매 첫 주에만 최대 동시접속자 수가 43만명에 달했고, PC방 점유율이 40%에 육박하는 등 게임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고대하던 디아블로3를 구입해 게임을 실행해본 결과 유저들의 불만도 폭발했다. 블리자드 코리아에서 미처 예상치 못할 정도로 이용자가 폭증하자 서비스 장애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특히 게임을 구매한 이후 며칠 동안이나 서비스 장애 등으로 아예 게임에 접속조차 해보지 못한 유저들까지 발생하며, 5만5000원의 구입비용을 환불해달라고 요구하는 구매자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으로 디아블로3를 판매한 블리자드 코리아는 게임 유저들에게 환불을 전면 거부했다.
구매 및 환불안내 화면에 '구매를 완료하면 환불/결제 취소를 할 수 없다'고 이미 명시한 만큼, 이미 게임을 다운로드받아 실행한 유저들에게 환불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블리자드 코리아에 대한 게임 유저들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고, 공정거래위원회 상담실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디아블로3 발매 첫 주인 지난 5월15일부터 21일까지 공정위 상담실에 접수된 민원 중 60%(524건)가 디아블로3 관련 신고였다.
디아블로3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게임 등 디지털콘텐츠는 물론 모든 전자상거래 관련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는 공정위 전자거래팀 직원들이 즉각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게임 콘텐츠의 경우 발매 초기에 대부분 판매되는 특성이 있어, 발빠른 초기 대응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전자거래팀 박정현 사무관과 송병도, 권리근 조사관은 디아블로3의 유통형태, 소비방식 등에 대해 분석하고, 법리적으로 철저히 검토한 끝에 블리자드 코리아의 환불 거부가 불공정 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을 직접 이용하기 전까지는 청약철회가 가능하다. 일방적으로 환불을 거부한 블리자드 코리아가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또한 조사결과 블리자드 코리아는 전상법에 따라 청약철회·교환·반품·보증 등의 조건과 절차를 계약서에 명시해야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주문자·주문일·결제금액 등의 정보만 간단히 기재한 주문접수 메일만 전송하는데 그쳤다.
게임 패키지와 관련된 의류, 도서 등에 대해서도 계좌이체 이후 제품을 배송하는 선불식 통신판매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제대금 예치나 소비자피해보상보험 등 구매안전서비스에 전혀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 전자거래팀 직원들은 소비자들의 환불을 거부하고 불공정 계약서를 교부한 블리자드 코리아에 시정명령과 함께 8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시정명령 이후 디아블로3의 40레벨 이하 유저들에게 신청시 전액 환불 조치를 취했고, 향후 디아블로3를 구입하는 소비자에 대해서도 20레벨 이전에는 환불해주기로 판매정책을 바꿨다.
연간 전 세계적으로 벌어들이는 매출만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1위 게임업체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에게 800만원이라는 과태료로 치명적 '데미지'를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국내 게임 유저들의 권익보호 측면만큼은 확실한 성과를 거뒀다.
공정위는 디아블로3 환불거부 등 블리자드 코리아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신속히 파악·적발해 게임 유저들의 편익을 증진시킨 박정현 사무관과 송병도·권리근 조사관 등 3명의 전자거래팀 직원들을 '6월의 공정인'으로 선정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 처리로 소비자들에게 보다 나은 디지털 콘텐츠 거래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급속히 성장 중인 온라인게임 등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전자상거래법 준수와 소비자 보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박정현 사무관은 수상소감을 통해 "법위반 행위를 입증한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 민원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 더욱 보람을 느꼈다"며 "이번 조치로 게임업계에 소비자보호 관련법령 준수의식이 정착되고, 소비자가 충분히 배려 받지 못하는 풍토도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