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판매자와 매수자가 사전에 합의해 실제 거래 가격보다 낮은 허위 가격으로 작성하는 매매계약서를 이른바 '다운계약서'라고 하는데요.
부동산을 판 사람은 이를 근거로 양도소득을 적게 신고해 세금을 줄이고, 구매자는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취득세를 적게 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동안 지방세법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과세기준이 취득가액인지, 장부 가격인지 혼선이 빚어졌던 시기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2006년 대법원의 판결로 다운계약서는 법적으로 엄연히 '위법'이라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집 사고 팔면서 다운계약서 한번 안 쓴 사람은 바보였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올 만큼 당시 제도의 미비점도 지적되곤 하지만, 부동산 다운계약서 매매는 '세테크'라고 보기에는 부적절한 측면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최근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이런 다운계약서 논란으로 직접 사과까지 하는 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다운계약서 매매행위에 따른 양도세 포탈금액을 국세청이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최근 조세심판원에 이른바 다운계약서 문제로 조세불복 심판을 청구한 부동산 임대업자 A씨의 사례를 보면 이런 의구심에 대해 좀 더 명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운계약서, 세무사·법무사·공인중개사 책임 아닌가요?" = 지난 1979년 8월 부동산 임대회사를 운영했던 A씨는 법인과 개인지분으로 각각 나눠서 토지를 매입한 뒤, 임대업을 해오다가 지난 2005년 2월 이를 B씨에게 양도하게 됩니다.
A씨는 양도세를 덜 내기 위해 B씨와 사전에 합의한 뒤, 계약서 1부는 실거래 가격, 또 다른 1부는 당시 부동산 기준시가를 적은 이중계약서를 만들어서 이 중 실거래가 보다 금액이 낮은 기준시가를 적용해 세금을 신고하게 됩니다.
이른바 '다운계약서'를 만들어서 세금을 적게 신고·납부한 셈이죠.
국세청은 지난 2011년 세무조사를 통해 이런 '꼼수'를 적발, A씨 회사에 법인세 누락분을 재청구하는 한편, 회사 대표였던 A씨에게 본인 지분만큼의 소득누락 금액을 상여처분해서 소득세를 더 내라고 통보하게 됩니다.
하지만 A씨는 "담당 세무사는 물론 매매를 주선한 공인중개사, 소유권 이전을 담당한 법무사 등이 관련 법에 무지한 상태였고, 취득세를 담당하는 지방정부의 실수도 있다"고 반박하며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특히 그는 이중계약서 작성이 탈세의도 자체가 없는 단순 '실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5년의 국세부과 제척기간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2005년 신고분을 2011년에 재부과한 과세당국에 한 푼의 세금도 더 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세법상 단순 장부 '오기(誤記)'로 판단한다면 5년의 국세부과 제척기간이 적용되지만, 부당한 '조세 포탈' 혐의를 적용한다면 사후 10년 동안 추징이 가능한데, A씨는 다운계약서를 단순한 실수로 봐서 5년의 제척기간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와 같은 A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세청은 "회사는 다운계약서를 통해 실거래가가 아닌 기준시가로 신고했고, 양도금액도 A씨 계좌로 입금됐지만 추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이는 고의적으로 조세를 포탈한 것이기 때문에 10년의 국세부과 제척기간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과세처분의 타당성을 강조했습니다.
□심판원 "다운계약서 국세부과 제척기간은 10년"= 양측의 주장을 심리한 심판원은 결국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제출된 증빙자료 등을 종합한 결과 A씨가 고의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려 했던 사실이 분명히 입증되기 때문에 단순한 실수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심판원은 "A씨는 세무사 등 전문가들이 해당 법을 잘 알지 못해 매출누락이 발생한 것이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리인이 한 행위의 효과는 A씨 자신에게 발생되므로 세금을 적게 신고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회사에 들어가야 될 양도대금이 A씨 개인계좌로 입금됐는데도 사측에서 아무런 회계처리와 세무조정을 하지 않았던 점을 종합해 볼 때, 이는 고의적으로 조세를 포탈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10년의 국세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심판원의 결정에 따라 A씨 본인은 물론 A씨 회사까지 국세청이 다시 부과한 세금을 꼼짝없이 더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최근 불거진 안 후보 사건 외에도 국무총리, 장관 후보자들은 물론 대법관 등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고위층 상당 수가 이와 같은 다운계약서 문제로 곤혹을 치렀고, 실제 낙마로 이어진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무대리인에게 맡겨서 몰랐다. 그렇지만 죄송하다"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대법원은 물론 조세심판 전담기관도 명백히 다운계약서를 '탈세 행위'로 보는 만큼, 앞으로는 다운계약서 문제가 더 이상 '관행', '인정' 등의 수식어로 포장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당장 눈 앞의 세금을 적게 내고자 스스로의 양심을 파는 행위는 언제든지 본인에게 독(毒)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일반적인 진리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 심판례 : 조심2012중15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