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선 판세는 여전 안개속이다.
여론조사 결과 3자 구도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40% 안팎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양자대결에선 박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초접전 양상이다.
대혼전이 지속되면서 '빅3'간 신경전이 가열되고, 상대에 대한 공격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정략과 정치공방만 난무하고 국정비전과 철학, 이를 실현할 정책과 리더십은 실종상태다.
다투어 쏟아내는 정책과 공약들이 경제민주화·복지 바람에 휩쓸려 모두 한 곳으로 수렴되고, 내용 또한 중간지대에 있는 유권자를 끌어당기기 위한 구호(口號)성격의 정책제시에 급급한 수준이다.
세 후보들의 판박이 정책행보 중계보도에다 NLL(북방한계선), 정수장학회, 단일화 등을 둘러싼 '짜증나는 공방'앞에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대선이슈가 죽었다"는 성급한 진단마저 나돈다.
가장 먼저 대선후보가 된 박 후보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문 후보나 안 후보는 둘 다 대통령으로서의 자격과 리더십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상황이다.
세 후보는 창조경제-공정경제-혁신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박 후보의 창조경제는 뜬금없고, 문 후보의 공정경제는 재벌에는 불공정하고, 안 후보의 혁신경제는 좋은 것만을 잘 모아놓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성장과 민주화를 어떻게 조화시키고, 복지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사회통합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에 관한 큰 그림과 실천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박 후보의 창조경제는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신뢰와 비전, 소통'의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공약은 진정성을 갖기 어렵다.
'준비된 대통령'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바로 잡고 뛰어넘지 못해 지지층의 외연확장은 고사하고 기존의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문 후보 역시 '친(親)노무현 프레임'과 '민주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문-안 두 후보는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을 위해 대선에 나왔지만 단일화 기선제압을 위한 샅바싸움이 초미의 관심사다.
통 큰 결단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명실상부한 대통합으로 미래를 열어나갈 리더십이 세 후보 중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있는 데 국민들의 안타까움이 있다.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진화하려 했던 정수장학회 논란 해법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인 격이 됐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박 후보의 역사인식 부재와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 여전히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불통'(不通)을 문제 삼을 정도다.
박 후보의 리더십은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두 번이나 구해 낸 '선거의 여왕'으로 입증됐다지만 선거형 리더십과 통치형 리더십은 별개의 문제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일인(一人) 정당으로 사당화(私黨化)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며 '당은 그 입만 쳐다보는' 의사결정구조 아래서 원칙과 소신은 불통과 독선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박 후보는 유신(維新)과 유신시절 일어난 인혁당 사건 문제에 대해서도 정리할 적기를 놓치고 뒤늦게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당 대선후보의 과거사 사과 같은 중대 사안을 당 지도부와 공개적·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후보 혼자서 결정하는 일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미래'를 구실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할 경우 과거와의 화해도, 대통합도, 진정한 미래도 열어나갈 수가 없다. '100% 대한민국'을 향한 박 후보의 대통합 광폭행보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점에서 박 후보의 통합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라있다.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참여정부가 막아내지 못한 뼈아픈 책임감에서 대선에 출마했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노무현정부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함께 친노(親盧)를 극복하고 민주당 쇄신에 솔선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 기성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에서 촉발된 '안철수 현상'은 '구태(舊態) 민주당'에도 응분의 책임이 있다.
문 후보의 친노 핵심 3인방이 정치쇄신안 마련을 위한 '새로운 정치위원회' 출범에 맞춰 선대위에서 전격 사퇴했다. 이들의 퇴진으로 문 후보가 인적쇄신 부담에서 벗어나 정치쇄신의 동력을 얻어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2선 후퇴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문 후보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무소속 안 후보가 야권후보 단일화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정치쇄신과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는 후보 자신과 민주통합당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던질 때만이 가능하다. 이런 통 큰 결단 없이 단일화는 어렵고, 단일화 실패는 야권후보 필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안 후보의 리더십 스타일은 '포스트모던'으로 불린다. 정치와 비정치, IT(정보기술) 등 이질적 요소를 섞어 활용하는 '융합의 리더십'을 표방한다는 얘기다. 대통령 혼자 나라를 끌고 가는 시대는 끝났다며 그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국민들이 대통령과 함께 답을 찾는 대화와 소통구조를 만들어내겠다고 기염이다.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능력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해 '불안한 안철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그에게 주어진 과제다.
정치공방도, 단일화방법 논의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블랙홀이 되어 후보가 갖춰야할 자격요건과 리더십에 대한 객관적 논의가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단일화 역시 두 후보가 각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그 방법이 자연스레 나올 수가 있다.
세 후보의 표심잡기 행보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재래시장 찾아 상인들과 악수하고, 군부대 찾아 안보 다지고, 복지시설 가서 어린이 끌어안는 '이미지 정치'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면 큰 틀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 길을 국민과 함께 열어 가야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선심성 공약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어떤 고통이 따르고, 어떻게 그 고통을 분담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호소하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 이런 '진심의 리더십'에 우리 모두는 목말라 있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