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정여사’ 코너가 인기다. 덕분에 소품인 개 인형 브라우니를 만드는 회사가 대박을 쳤다고 한다.
보험회사 역시 ‘정여사’같이 상식에 맞지 않는 이유를 들어 민원을 넣는 ‘블랙컨슈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업의 특성상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민원이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가면 더욱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에 보험사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블랙컨슈머들 가운데는 통신사, 보험, 은행 콜센터의 직원 출신이나 보험설계사 또는 텔레마케터 등 과거에 악성민원인을 직접 응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아이러니다.
이들은 전문 블랙컨슈머들이어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이다. 이들은 보험사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험사로서는 최악의 상대가 된다.
블랙컨슈머 가운데는 적게는 몇만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람부터 몇천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전문적 사기꾼까지 다양하다.
요즘 여행자보험의 가입자가 많은데 가입자가 많은 만큼 발생하는 민원과 소송도 다양하다. 보통 사람으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으로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황당한 사례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약혼자와 여행을 떠났는데 원하지 않는 임신이 됐다며 2억원의 양육비를 물어내라는 사례이다.
그들은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했다. 여행사에 두 사람이 따로 잘 수 있는 트윈침대를 예약했는데 같은 침대를 쓸 수밖에 없는 더블침대방을 줘서 원치 않는 임신이 됐다. 예정에 없는 아이를 양육해야 되니 양육비 2억원 내놓으라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해변길을 걷다가 비키니 아가씨에 한눈을 팔다 버스 승강장에 부딪쳐 코뼈가 부서졌다며 수술비 500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한 사례도 있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데 텐트 위로 공수부대원이 떨어져서 장비가 망가졌다며 100만원을 청구하거나, 스리랑카로 여행가서 야자수 밑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코코넛이 떨어져서 다쳐 수술비 1천만원을 요구하는 특이한 사건도 여행자보험 가입자들에게서 벌어진다.
운이 나빠 여행을 망친 사람이 보험금으로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알프스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눈이 없어서 여행을 망쳤다. 그는 스키장비 구입비용 5백만원을 보상해달라고 보험사를 찾았다.
블랙컨슈머 가운데는 사기꾼도 있다. 외국에선 변호사가 법률지식을 이용해 잔꾀를 부리다 큰 코를 다친 사례도 있다.
사기꾼 변호사는 화재보험을 가입하였다. 비싼 쿠바산 시가를 다 피운 다음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였다. 청구서에다 ‘일련의 조그마한 화재’로 시가를 잃어버렸다고 적었다.
보험사는 “보험계약자가 시가를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비했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을 할 수 없다”고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이 사기꾼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
재판장은 “소송이유가 웃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입한 보험은 시가도 보장대상이며 화재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고 ‘보장받을 수 없는 화재’에 대해 약관에 언급이 없으므로 청구금액인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보험사는 길고 지루한 소송을 계속하는 대신 판결을 수용했다. 대신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는 즉시 사기꾼 변호사를 방화혐의로 고소하여 구속되게 했다. 재판과정에서 확인되었듯이 보험가입 물건에 고의로 화재를 일으켰기 때문에 24개월 징역과 3천만원 벌금에 처해졌다.
필자도 보험회사 근무 시 해약환급금이 적다며 “납입보험료 전액을 주지 않으면 불태워 죽이겠다”며 신나통을 들고 와 협박하는 고객 때문에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7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나는 죽어도 별로 억울하지 않다. 그런데 너는 40대 초반이잖아. 지금 죽으면 억울할 걸…” 지금도 그 목소리 귀에 쟁쟁하다.
이 시간에도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정여사’같은 고객들에게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먹이사슬의 최 밑단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처지를 헤아려서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력] 삼성생명 부장, AIG생명 부장, GE캐피탈코리아 이사, 에이스(뉴욕)생명 전무, 조세일보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