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득, 나오연, 신상식. 1980~90년대 초반 한국세무사회를 이끌었던 거목들입니다. 세무사회의 '정치인 회장' 시대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납세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세무사들의 사명이라고 하지만 사실 '밥벌이'에 더 치중한 면이 없지 않았던 시절의 세무사회가 이들 정치인들을 회장으로 맞아들이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무사회장이되면 수 천명의 회원들이 떠받들게되고 정치인 입장에서는 선거 때 가장 중요한 표심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세무사회장 자리는 꽤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회장은 2년임기의 회장자리를 연임(2선)을 하고도 한번 더 해보겠다(3선)고 회칙을 개정하려다 회원들의 반발에 직면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회원들의 엄청난 반발에도 그는 결국 개정안을 발의했고, 임시총회를 소집해 회원들의 의견을 물었으나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는지 그는 2년 뒤 다시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회원들은 그에게 표를 많이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정치인이 당선되었습니다.
지난 1993년 세무사업계를 강타했던 이른바 세무사업계의 '3선개헌'으로 불리운 '회장 중임규정 폐지' 논란이었습니다. 20년전 세무사업계를 뒤흔들었던 '3선(選)에 대한 추억(追憶)'이 2012년말 지금 세무사업계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습니다.
세무사업계에서 회자되는 3선은 2년 임기의 세무사회장직을 세 번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뜬금없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툭 까놓고 이야기를 짚어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말 그대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회자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다면 술자리 안주거리조차도 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먼저 가능성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법적으로 하자가 있느냐 하는 점일 것입니다. 기자가 만난 업계의 법 전문가들은 중임제한 규정은 '평생에 두 번밖에 할 수 없다'라는 게 맞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인 법 상식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회장의 중임을 제한하고 있는 규정인 세무사회 회칙 23조 6항은 '회장 및 감사는 1차에 한하여 중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회장에 한하여 한번 중임을 허용하고 있던 것을 느닷없이 '감사'를 넣어 지난 6월 개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임제한 규정을 피해나갈 미세한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부칙 조항에 '이 회칙은 총회가 의결한 후 기획재정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날부터 시행한다'라고 명시되면서 현 회장도 이 조항의 개정이후 부터 적용 받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특히 세무사회 회칙의 해석권한은 현 회장이 모두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상임이사회에 있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왜 갑자기 이 조항을 개정했을까? 라고 의문을 가졌던 회원들의 이야기가 강하게 뇌리를 스쳐갑니다.
다음으로 현 회장의 세 번째 도전이 가능한지는 법률적인 문제보다 당사자의 생각일 것입니다. 당사자가 출마할 의사가 없다면 이런 소문들은 아무 소용없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정구정 회장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기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정 회장은 "어떻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속마음일까?'라는 의문부호가 뒤따랐습니다. 생각이 바뀔 수 도 있다는 느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해 회계사들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던 세무사법 개정을 이끌어 내면서 세무사업계의 '영웅'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습니다. 또 그는 지금 세무사제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당장 올 정기국회가 끝나면 세무사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그는 쉬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 업계는 일부 회원들이 회칙을 위반했다는 논란으로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는 모습니다. 일부 회원들의 고언(苦言)에 대해 현 회장은 세무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니는 회장을 잘 한다고 칭찬은 하지 못할 망정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한 지인은 "잘 한다고 칭찬을 함으로써 그의 재능을 십분 활용해도 모자랄 판에 그의 성과를 폄하하는 듯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세무사회가 대외활동을 통해 이루어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의 3선도전을 부추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 회장이 3선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정 회장이 다음선거에 출마를 한다면 당선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3선이야기의 전파력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업계의 그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악인'으로 낙인찍히지 않는 한 아마도 내년에 출마를 한다고 해도 손쉽게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군들에게서 특별한 포스가 발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 회장이 3선출마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 같은 '당선가능'이라는 자신감이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입니다. 솔직히 법률문제는 당선후 법정에 가더라도 임기동안에는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최근 일어난 한가지 사건이 강하게 오버랩 됩니다. 모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세무사법 개정안입니다. 세무사들이 조세소송대리권을 가지게 해 달라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이 제출되자 세무사회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올해 국회에서 처리되지도 못할 법안을 이렇게 만천하에 공지를 하면 개정을 하지 말자라는 것'이라며, 크게 낙담했다는 소식입니다. 관련 세무사법 개정작업은 변호사들이 즐비한 국회법사위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데서 덜컥 제출해 밀어붙인다고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명분에 고개를 끄덕일 법사위가 아니라는 것이 세무사회의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점에서 세무사제도개선분야에서 만큼은 '선수'라고 불리는 현 회장으로서는 내년 국회가 열릴때까지 '작업'을 단단히 해놓은 후 본게임을 해도 늦지 않은데 갑자기 세무사회의 전략이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세무사들의 조세소송대리권 추진을 위한 법 개정을 위해 그는 올해 많은 물밑작업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같은 전략적 작업을 마친후 내년 국회에 '도전장'을 내민다면 극적인 성공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란 수순을 가정한다면 그가 소송대리 추진을 밝힐 시기는 내년 상반기경일 것입니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풀면 지난 4월 개정했던 회장 임기연장(2개월)을 골자로 하는 회칙은 단순한 임기연장이 아닌 다른 노림수가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미치면서 '아뿔싸' 얼굴을 감싸는 회원들도 있을 것입니다. 내년 6월(세무사회장 선거때) '내가 세무사제도개선에는 일가견이 있으니 이 법안(소송대리권추진)에 저의 회장직을 걸테니 '3선제한' 같은 구닥다리 사고에 매달리지 말고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사자후(獅子吼)를 외친다면 이미 업계의 '영웅'인 그로선 한번 해 볼만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세무사업계의 최대의 화두는 지난해 성취한 성과를 여하히 지켜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내는데 누가 가장 적임자일까요. 당연히 성취한 자 일 것입니다. 탈환한 성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 몇 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회원들은 그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세무사업계는 이같은 현 회장의 '3선도전 시나리오'가 이미 업계에 회자되고 있는데도 많은 세무사들이 '반론'을 펼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럴듯한 추론인 모양입니다. 물론 현 회장이 출마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소설'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전혀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데 무게를 싣고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3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인은 또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입니다.
세무사회가 발간한 세무사회 40년사에 따르면 1979년 4월부터 81년 4월까지 2년동안 세무사회장을 지낸 임영득 씨의 경우 다시 89년부터 93년까지 4년을 더 재직했습니다. 81년 2년의 임기를 마친후, 다시 85년 회장에 재선되어 87년까지 2년 임기(한차례 중임)를 지냈으나, 87년 4월 또다시 2년임기의 회장직에 출마해 당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현행 세무사회 임원선거규정인 '1차에 한하여 중임 할 수 있다'는 조항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중임제한 규정이 79년 제정되면서 당시 재직중인 회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가능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런 전례가 지금 업계에서 불고 있는 3선이야기의 강한 불쏘시개가 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더해 1995년 중임제한 규정을 뚫고 출마했던 나오연 씨의 경우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아주 강력한 선례입니다. 아마 현 정 회장이 3선출마를 강행한다면 이 사례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이 최근 세무사업계에서 떠도는 '3선의 추억'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 회장은 이런 3선이야기들이 떠도는 것에 전혀 불쾌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 잘하는 저 사람이 나오면 또 당선될 수도 있다라는 여론이 회자되면, 현 회장은 자연스럽게 일 잘 한 회장으로 이름이 빛나는 것이고, 또 3선이야기 자체가 무엇보다 '레임덕'을 예방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읽힙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회장 한번 더 해보겠다고 20년 전 중임규정 폐지를 주창했던 사람이 최근에는 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봅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정구정 회장은 3선에 도전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기자는 '하지 않을 것이다'에 500원 걸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