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후 사우나 불가마에서 잠자다 사망했다면 부검결과가 없더라도 사고의 개연성이 인정된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결정은 부검을 실시하여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고가 급격성, 우연성, 외래성 등 약관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토록 한 것이어서 향후 보험금지급 심사 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11일 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조정결정서를 통해 상해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증빙이 없더라도 사고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면 상해사고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여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라고 밝혔다.
52세의 화물차 운전자인 A씨는 저녁 늦게 술을 마시고 인천시 소재 한 사우나의 불가마에서 잠을 자던 중 다음 날 아침 7시경 종업원에 의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유족들이 부검을 원하지 않는데다 타살 혐의가 없어 가마실의 높은 온도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사건을 종결처리 했다.
수익자인 유족은 손해보험회사에 약관에서 정한 상해사망보험금 3천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청했다. 평소 건강했던 피보험자가 사우나 찜질방에서 수면 중 사망하였다면 이는 약관상 보상하는 손해, 즉 상해사망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이에 대해 A씨가 상해사고로 볼만한 외상이 없고, 사망원인도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부검을 실시하지 않아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으므로 그에 따른 불이익은 유족들이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쟁조정위원회는 건강한 사람도 고온의 사우나 불가마에서 장시간 수면을 취할 경우 사망할 위험이 높은데 이러한 사고의 개연성을 무시한 채, 의학적으로 사망원인을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해당약관상 상해사망 보험금의 지급조건은 사고가 급격성, 우연성, 외래성을 모두 충족함과 동시에 그 사고와 사망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위원회는 이 사고의 경우 A씨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발생해 급격성 요건을 충족했고, A씨가 원하지 않은 결과여서 우연성 요건도 갖췄으며, 사망원인도 질병 등 A씨의 체질적인 요인에 의한 것도 아니어서 외래성 요건도 충족한다고 보았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사망 원인이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더라도 사고의 개연성이 인정된다면 보험금 지급요건으로 충분하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의 경우 74℃나 되는 불가마에서 장시간 머무르면 과도한 혈관 확장으로 질식사할 가능성이 높고, 경찰도 사망 원인을 질식사로 추정하고 있는 만큼 인과관계는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 및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보험소비자의 권익을 보다 두텁게 보호한 사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부검을 하지 않아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보험금 지급에 소극적이었던 보험회사들의 보상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