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전문가, 금융권 기피현상…몸값만 높아진 CISO
금융사, 공인인증서 변경 논란에 정부 눈치보기 급급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 유출 사고가 난 뒤 최근 금융권에서는 이를 수습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이지만 말도 편히 못 꺼내는 분위기입니다.
무엇보다 금융사들을 가장 부담스럽게 하는 것은 오는 10일 정부에서 발표할 '개인정보 보호대책'의 내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 여러 부처가 모여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인 상황이라 금융권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만큼 정부는 향후 정보 유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규율과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번 사고의 책임을 금융사들에 묻는 동시에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금융권 현장에서는 말 못할 고민과 시름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은행과 보험사들 사이에서는 CISO(chief information security officer) 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CISO는 보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보호 최고책임자를 말하는데요.
당국에서는 앞서 개인정보 보호대책 중 일부를 발표해 금융사들이 CISO를 의무적으로 채용하게 하고 일정한 규모 이상의 대형 금융사는 임원의 자격을 주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임원 이상으로 채용하려면 많은 인건비가 들 뿐 아니라 향후 사고 발생 시 해임과 재취업 금지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어 지원자로서는 매우 부담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입장입니다.
복수의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서 CISO 자격 요건에 맞는 경력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 사고가 났을 때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채용 과정이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공인인증서 보안 체계 및 데이터베이스(DB) 관리 방식도 전반적으로 변경될 예정이어서 금융사들의 비용 부담이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사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우리도 이게 맞는지 자신감이 없어질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금융회사 잘못으로 정보 유출 사고가 났으니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정도가 과해질 경우엔 결국 부작용도 생격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는 금융감독당국도 보안 체계의 변경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여론에 밀린 나머지 다급하게 대책을 추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금융당국조차 우왕좌왕하는 사이 금융사들의 부담은 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금융당국이 최근 논란이 되는 공인인증서 보안 체계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인터넷과 스마트폰 뱅킹의 개발에도 제동이 걸려 있다"며 "기존 공인인증서 체계가 변경될 경우 재차 관련 시스템을 손봐야 하기 때문에 몇가지 버전으로 개발을 하거나 아예 손을 놓고 기다리는 상황이다"고 전했습니다.
경제활동하는 국민 1명당 5~6건의 개인 정보가 금융회사 비리 직원에 의해 유출된 이번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人災)였을 뿐 아니라 이를 내부 통제하지 못한 금융권의 책임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금융권에 물을 수는 없습니다. 사전에 큰 밑그림에서 보안 체계를 점검하고 대비를 세우지 않은 금융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융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고 앞으로 금융 서비스를 믿으면서 이용하게 하려면 큰 구조적 개혁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여론의 비판을 일시적으로 잠재우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금융 보안 체계를 안전하게 지킬 실효성 있는 대책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