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날들이 반복되던 우리 가족에게 모처럼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먼 타국에서 가족들과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이를 악물고 돈을 벌고 있을 아버지, 그 아버지가 우리들 곁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은 암울했던 우리 가족에게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늘 눈물 자국으로 얼룩졌던 어머니의 얼굴에도 점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외가에서 받은 설움을 단번에 날려 보내겠다는 의지가 얼굴에 가득했다. 고된 일로 늘 굽어 있던 어머니의 허리와 어깨가 펴지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너거 아부지가 일본에서 곧 오신단다!”
형과 누나, 그리고 나도 그리운 아버지의 소식에 배고픔도 잠시 잊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뛰어다니며 동무들에게 자랑하기 바빴다. 이제 지독한 배고픔도, 서러움도, 그리움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이 우리 세 남매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못했다.
양손에 돈과 음식을 가득 들고 단숨에 달려와 이 좁고 너저분한 문간방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던 우리 가족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배를 타고 마산에 도착했던 아버지가 마산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붙잡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일본에 건너가자마자 그전부터 일했던 직조공장에 무작정 찾아갔다. 몇 년 전 인연을 내세워 다시 일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고개를 조아려가며 부탁을 했지만, 공장장은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무슨 일이라도 좋심더. 시켜만 주이소. 고향에는 저만 믿고 사는 가족들이 있심더.”
끈질기게 애원하는 아버지에게 감동한 공장장은 결국 아버지를 채용했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가족들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불어가는 돈을 보며 아버지는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동안 일본에서 모은 돈으로 당시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는 ‘동동구리무(로션)’와 ‘비로드’ 옷감을 사모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친분을 쌓았던 동료가 한국에 가져가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아버지로선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였다.
아직은 돌아가기엔 좀 부족한 돈이었지만 고향에서 자신만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고향에 돌아가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아버지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버지는 공장장을 찾아가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를 탔다.
‘아, 드디어 고향땅을 밟게 된다······.’
고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아버지는 부푼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지아비 없이 홀로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아버지 없이 조그만 문간방에서 눈치 보느라 기가 잔뜩 죽어 있을 아이들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먹먹해져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희망인 짐 보따리 속 물건들이 밀수품으로 분류되어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아버지에게는 불행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저 다른 사람의 말만 그대로 믿고 행동에 옮기다 큰 낭패를 보게 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세관 직원에게 사정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 물건은 모두 밀수품이기 때문에 압수하고 아버지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여기저기 청을 넣어 일본에서 들여온 물건만 빼앗기고 간신히 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피땀 흘려 가며 모은 돈이 그렇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가 느꼈을 허탈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이제 배부르고 따뜻하게 살 수 있다는 우리 가족의 기대도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음은 물론이다.
돈을 벌어 오겠다며 떠난 아버지는 그렇게 빈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와 다시 같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외가에 머물 수 없었다. 외가 식구들의 홀대가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진 탓도 있었지만, 처음 외가에 몸을 의탁할 당시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만’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정든 외갓집 문간방을 떠나기 위해 다시 짐을 쌌다. 문간방살이에 대한 기억은 어린 마음에도 다시는 떠올리기 싫을 만큼 혹독했지만, 꼭꼭 여민 짐을 들고 방을 나서는 순간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대구시내 변두리 지역인 비산동으로 이사했다. 당시 그곳은 조그마한 직물공장들이 많이 모인 지역이었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베 짜는 기술자로 일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직물공장에 겨우 취직하게 된 것이다.
비록 아버지가 3년 동안 일본에서 고생하며 모은 돈을 한순간에 날려버렸지만, 우리 가족은 대구시 변두리 지역인 비산동으로 이사를 가며 작지만 따뜻한 희망을 품었다.
대구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지금의 비산동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대구 중심가로 발전했지만 그 당시는 대구에서도 서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달동네였다. 이곳 158번지 두 칸 전세방이 우리 식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보금자리였다.
이사를 가느라 입학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나는 또래보다 한 살 늦은 아홉 살이 되어서야 인근 대성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조그마한 영세 직물공장의 직공에 불과했던지라 봉급은 몇 푼 되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해 받아오는 아버지의 월급이 우리 가족의 유일한 수입이었기 때문에 그 돈으로 형과 누나, 그리고 밑으로 새로 태어난 2명의 여동생까지 모두 일곱 식구 입에 풀칠도 해야 했으니, 당시 우리 식구들의 삶은 고된 일상의 연속이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틈만 나면 우리에게 막걸리를 한 주전자 받아오게 한 뒤 쉬어 꼬부라진 김치 쪼가리를 안주 삼아 신세를 한탄하시곤 했다. 술이 과한 날이면 술주정도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형과 누나는 나를 데리고 집을 피해 나갔다가 아버지가 더 이상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 무렵에 조용히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당시 그 시절의 상황은 지금도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외갓집 문간방에 얹혀살 때보다는 심적으로 좀 더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무엇보다 술 잡숫고 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는…….
옷은 날씨가 추워지고 더워짐에 따라 겨우 바꿔 입을 수 있는 형편이었고, 나는 형이 입다가 더 이상 작아서 입을 수 없는 옷을 물려 입는 수준이었다. 목욕은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일 년에 딱 두 번, 설날과 추석이 되어야 묵은 때를 벗길 수 있었다. 겨울이면 그나마 세수도 제때 못해 머리와 속옷에는 이가 득실거렸다.
당시 어머니는 일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절에 다니셨다. 팔달교 근처에 있던 절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가끔 내 손을 잡고 함께 가기도 하셨다.
그러던 중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 집 이웃에 살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거의 매일같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용근이 엄마. 그렇게 매주 이십 리나 되는 절에 다녀서 얻은 게 도대체 무엇인가? 다 소용없는 짓이네.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가까운 교회에 나가세.”
어머니는 이웃 아주머니의 끈질긴 권유로 결국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나아질 것도 없는 현실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따라 동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리라.
타고난 성품이 워낙 단호하고, 한 번 맘을 먹으면 끝을 보기 전에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던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이후, 절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절망만이 가득한 당신의 인생살이가 어머니를 교회에 더욱 열심히 다니게 만들었던 것이다. 답답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떤 절대자에 의지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낼 수 없었던 심정이 어머니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다지게 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아낙네가 혼자서 외출을 할 때는 늘 어린 자녀를 데리고 다녔다. 그런 이유로 나는 특별히 어머니의 간택(?)을 받아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일에만 교회에 출석하던 어머니는 점차 새벽기도, 철야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나 또한 어머니 손을 꼭 붙들고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때로는 두어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지겹고 짜증이 나서 가기 싫다며 버티기도 하였지만, 다른 교인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 속에서 알 듯 모를 듯 가슴을 파고드는 따뜻한 기운이 참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그때부터 나를 향해 움직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어머니와 함께 부르던 찬송가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교회가 지금은 그 지역 일대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는데 바로 ‘대구달서교회’이다.
우연히도 지난 2011년 3월에 미국 뉴욕에서 특강을 마치고 귀국한 그 다음 날 주일예배 때 내가 그 교회에서 눈물의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리운 얼굴들을 반갑게 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