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찾아내고 적발하는 일은 성과가 없으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성과가 없으면 열심히 한 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묻혀버리기 쉽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과가 없다 싶으면 쉽게 포기하거나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내심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서울세관 사이버조사과 장선웅 관세행정관(사진)은 수많은 수출입 실적 중 단 한 건의 밀수출이라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어느 세관에서 수십억의 밀수를 잡아냈다던가 마약을 적발했다는 등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제 수출입 실적과 대조해 분석하는 등 길고 지루한 작업을 수개월 동안 진행했다. 그 결과, 밀수를 적발하긴 했지만 그 규모가 크지 않아 언론에 보도되는 등의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장 행정관은 오히려 밀수가 적어 기쁘다고 말한다.
장 행정관은 11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중고자동차 수출입 현황을 분석했던 일을 회상하며 "방대한 자료의 분석시간과 분량에 비해 결과는 미미해 실망했지만 갑자기 이런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수출신고 내용대로 수출이 이뤄진다는 것은 세관 직원 입장에서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방대한 자료 속 버틴 힘은 '인내' = 장 행정관이 중고자동차 수출입 현황 자료를 분석해 불법적인 일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나라 물동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부산 신항의 1분기의 차량 수출 규모는 수만대이다. 단 두 명의 직원이 중고자동차 수출입 업무를 하고 있어 자료분석은 엄두도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단 두 명이 수출입 관리 업무를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다.
장 행정관은 지난해 1월 부산 신항에서 선적되는 차량이 수출신고 된 내용과 동일한지를 검사하는 일을 했었다. 마음 같아선 전수검사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했지만 하루에 수많은 중고자동차가 드나들면서 두 명의 직원이 전수검사를 하는 것은 꿈도 못 꾸지 못했다.
전수검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놓치고 있는 불법사항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 행정관은 생각했고 결국 부산 신항에 드나드는 수많은 수출용 신차와 중고차들의 수출신고 내용을 분석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중고차를 수출한다고 허위 신고하고 그 차량을 빼돌려 국내에 유통하는 일은 그동안 수없이 있어 왔고 장 행정관의 눈을 피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1분기에만 수만대의 차량이 수출된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보자 장 행정관도 당황스러웠지만 이왕 하기로 마음 먹은 것 끝까지 해보자고 생각했다.
장 행정관은 "수출통관업무 담당인 단 두명의 직원이 매일 처리해야하는 업무량도 엄청난데 이것을 언제 다 확인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정말 꼭 해야 할 일은 아닌데, 결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앞섰지만 시작한 이상 끝은 봐야겠기에 동료직원과 의기투합해 자료를 대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이틀, 사흘 뚜렷하게 자료가 줄어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의지를 불태울 특이사항 또한 발견되지 않아 지루함마저 느껴졌다"며 "오기를 갖고 시작한 이상 끝까지 확인하자라는 마음으로 자료를 보던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특이사항이 발견됐다"고 회상했다.
장 행정관은 2012년 가을, 그랜저 1대를 수출하는 내용으로 인천세관에 수출신고를 했는데 선사에는 일본산 혼다 CR-V 1대를 부산항에서 수출 선적하는 것으로 접수가 된 것을 발견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자 선사의 협조를 통해 해당건의 선적의뢰 서류를 확인하니 세관에 신고한 수출신고필증 상의 물품내역을 위조, 복사하는 방법으로 실제 서류의 사본인 것처럼 허위의 수출신고서를 작성했다. 명백히 공문서를 위조하여 다른 물품을 밀수출한 내역인 것이었다.
장 행정관은 "한 건이라도 실체적인 내용이 발견되었기에 의지를 태워 계속 대조작업을 했지만 그 이후로는 거짓말처럼 다른 내역은 단 한건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분석시간과 분량에 비해 그 결과는 심히 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로 그만큼 수출신고 내용대로 수출이행이 이루어진다는 점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성과보다는 즐기는 것 중요" = 장 행정관은 위반 사실에 대해 부산세관 조사국에 고발의뢰를 했고 조사팀의 적극적인 조사로 혐의자의 추가범행이 밝혀졌다.
혐의자는 리스차량 등을 국외에 매각하여 현금화할 목적으로 같은 수법으로 수차례에 걸쳐 중고차를 밀수출한 범행사실이 있었지만 사업장, 주거지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명수배한 후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서울세관으로 근무지를 옮긴 장 행정관은 뜻밖에 소식을 접하게 됐다. 1년 전 고발 의뢰했던 건의 지명수배자가 체포됐지만 그 사람은 노숙자였던 것이다.
당시 만취상태로 공원에서 잠을 자고 있던 것을 지나가던 행인이 사고자로 생각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알고보니 지명수배자 임이 밝혀져 부산세관 조사팀에 인계됐다.
나중에 상황을 파악해보니 누군가가 노숙자에게 몇 번의 식사와 술을 대접해 안면을 갖게 됐고 이후 이런 저런 부탁을 해서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도록 해 준 것이었다.
장 행정관은 "상황이 이러한 탓에 실제로 중고차를 밀수출하고 이득을 취한 사람의 실체는 명백히 밝힐 수 없었다"며 "사회적 약자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만을 취하는 현실을 직접 들으니 마음 한 구석에는 개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방대한 자료 속에서 찾아낸 밀수출은 단 한 건, 그마저도 혐의자가 잡히지 않아 장 행정관의 노력은 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장 행정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만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장 행정관은 믿고 있다. 성과만을 쫓아가다가는 그 성과에 집착하게 돼 본질을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장 행정관은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즐겁게 생활하다 보면 일도 생활도 모두 다 잘될 것이고 관세인의 한사람으로서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