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허백련 등 유명화가 키운 예술의 젖줄
불교는 불교식으로 무등산 이름의 기원을 추측한다. 무유등등(無有等等), 그러니까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부처와 견줄 이는 없다'는 불가(佛家)의 용어가 산 이름으로 굳어졌다. 무등산 구석구석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는 불교의 흔적들을 목격하면 일견 수긍 가능한 대목이다. 비로봉, 반야봉, 의상봉, 그리고 미륵(彌勒) 관음(觀音) 여래(如來)로 이뤄진 삼존석 등이 좋은 보기다. 무유등등산이 무등산이 됐다는 게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석가모니에게 문의할 처지는 못 된다. 그저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무등산의 정치성으로 되돌아간다. 정치는 상징이다. 상징은 이미지다. 야당이 무등산을 '당산(黨山)'처럼 받드는 것은 탓할 바가 못 된다. 야당 국회원은“지금 무등산에 새 바람이 불고 있는데 민심의 바람이고, 영산강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데 민심의 물결”이라고 목청을 높인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다수결(多數決)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무등산 입석대(立石臺)는 천연의 신전으로, 전라도의 종교 중심지가 돼 광주, 화순(和順), 동복(同福) 사람들의 제단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홍삼우당(洪三友堂)은 “무등산의 영령하고 빼어난 기운이 수백 년 사이에 길러내고 배태한 것이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절의와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충직,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도덕문장과 김덕령(金德齡) 장군의 충용신무(忠勇神武) 같은 것이 있으니, 어찌 이 산에 영수(靈秀)함이 모였기 때문이 아니랴”고 증거를 들이댄다. 또 양진영(梁進永)은 “맑고 영험스럽고 조화롭고 해맑은 기운이 모여 예로부터 명인달사(名人達士)가 많았다”고 예찬한다.
이토록 영험한 무등산에서 가장 강력한 영기를 뿜고 있는 봉우리는 규봉(竅峰 혹은 圭峯)이다. 규봉 중에서도 풍혈대(風穴臺)의 영기는 실로 대단하다. 풍혈대 바위틈으로 빠져나가면 노총각도 결혼날짜를 잡을 수 있다. 죽어서 극락으로 간다. 풍혈대가 극락대로 통하는 이유다. 세 차례 빠져나가면 삼재(三災)도 면할 정도다. 풍혈대를 빠져나온 처녀는 결혼 후 순산을 보장받는다. 그래서 순산대라고도 불린다. 풍혈대 옆 금강굴의 약수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다. 찾아오는 이가 많으면 물이 펑펑 쏟아지고, 적으면 졸졸 나온다. 자동급수 시스템이다.
석불암(石佛庵) 또는 자장암(慈藏菴)이라 불리는 마애불은 산신 기도의 명소다. 석불암 옆의 바위굴인 지공(指空)너덜에는 지공선사의 염력이 남아있다. 인도의 지공선사가 좌선수도한 곳이다. 설법 도중 흔들리는 바위를 지공은 법력으로 제어했고, 그 효과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나뭇잎이나 뱀 따위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한다. 지공너덜을 지나면 메밀너덜이 나타난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이 일대의 바위색이 모두 하얗게 변한다. 메밀 꽃밭에 든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다.
조상들이 영장(靈場)으로 신성시하며 수호해온 장소가 천제단이다. 천제단이 있는 곳은 묘향산과 구월산 그리고 무등산뿐이다. 천제단(天帝壇)으로 무등산의 영기를 알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