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조세 환경은 경제여건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복잡다단하게 변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국제조세와 관련한 이슈는 그 복잡성 때문도 때문이지만 사회적인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 정도는 되어줘야(1996년 내한공연 수입 관련 세금 논쟁) 관심을 끄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제거래나 해외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상황은 완전하게 달라졌다. 다국적기업의 이전가격과세 문제뿐만 아니라 외국계 펀드 등의 국내투자에 대한 과세, 조세피난처(Tax Haven)를 이용한 거주자의 역외탈세 문제 등 '이슈 투성이' 영역이 됐다.
과세당국인 국세청의 대응 자세는 어땠을까.
국제조세분야의 역량을 늘리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전문 인력을 키우고, 담당조직·제도를 재정비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여 왔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양자간·다자간 국제공조에 적극 참여하면서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세회피 막겠다"…제도·인력 어떻게 변했나
1995년 국제조제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이하 국조법)되기 이전에는 글로벌 조세환경 변화에 발맞춘 시도가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의 글로벌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국제조세에 대한 인식과 실제 경제 현장에서 불거지는 각종 국제조세 측면의 문제들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매각 차익 세금 논쟁은 국제조세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역외탈세 차단을 지상과제로 삼으면서 국제조세는 각광받는(?) 영역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러한 시대조류에 발맞춰 국제조세와 관련한 법과 제도도 보다 세련되고 촘촘하게 손질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6년 국제거래에 있어서도 실질귀속자 및 경제적 실질을 기준으로 조세조약이 적용됨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과세 투명성을 높였다.
2010년 해외 금융기관에 일정금액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납세자에게 해당 금융자산에 대한 보고의무를 규정한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특정외국법인의 유보소득 합산과세 제도의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특정외국법인이 유보소득 계산명세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등 조세피난처 세제의 적용과 관련된 납세자의 자료제출 의무를 강화했다.
최근 들어서는 다국적기업에 의한 세원잠식에 대응하기 위해 OECD와 G20가 공동으로 추진한 '세원잠식과 소득이전(BEPS) 방지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해 국내법을 손질하고 있다.
요동치는 환경변화에 국세청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국세청은 기존 국제조세관리관실의 기능을 보강, 2009년 '역외탈세 추적전담센터(현 역외탈세방지담당관)'를 발족했다.
전문 인력이 국제조세 분야에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국제거래분야 전문보직제'를 도입(2011년)해 운영하고 있다. 국제조세 조사 전문요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국제조세 및 국제조사 전문가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인력은 2010년 1357명에서 지난해 1667명으로 늘었다.
국제적 탈세행위를 뿌리 뽑는다는 정부 차원의 노력도 국세청의 세무행정력 강화 추세와 맥을 함께 하며 이루어지고 있다. 다자간 조세조약도 활발히 체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86개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했으며, 12개국과 체결을 추진 중에 있다.
◆…한승희 국세청 조사국장이 지난 1월 세종시 국세청사에서 역외탈세 세무조사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해외로 눈 돌린 납세자, 어떻게 감시할까
국내기업(개인 포함)들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해당국 조세제도와 금융기관을 활용한 역외탈세 사례가 상당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이 같은 탈법행위를 막기 위해 '해외금융계좌(10억원 초과) 신고제도'를 도입했는데, 매년 신고액이 늘어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해외금융계좌 신고제가 도입된 2011년에 신고액은 11조6000억원이었다. 이후 2012년 18조6000억원, 2013년 22조8000억원, 2014년 24조3000억원, 2015년 36조9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동안 숨겼던 해외 소득이나 재산을 끄집어내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 3월31일을 끝으로 종료한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역외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던 재산가(기업 포함)들의 양심고백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1500억원이 넘는 세수증대 효과를 봤다.
우리기업들의 해외진출 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의 국내진출도 활발해지면서 국제거래와 관련된 세원파악 업무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국세청은 기존 국세통합시스템의 법인세 관련 정보만으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세원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국제거래세원 통합분석시스템(이하 ICAS)을 개통(2010년)했다. ICAS에는 약 3만여 개의 국내법인 자료를 포함해 전 세계 약 1억6000만여 개의 기업 재무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에 수록된 법인세 관련 재무자료와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국제세원관리, 세무조사 등 다양한 업무에 활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지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대대적인 역외탈세 세무조사를 통해 약 6조2000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징수했다.
역외탈세 대응 위해 세계와 '손'잡다
현재 역외탈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자는데 세계가 한 뜻으로 뭉쳐있다. 선진국 중심으로는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책으로 여길 정도다.
그동안 역외탈세에 대해 국세청의 과세칼날은 무뎠다. 납세자와 과세당국 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서다. 해외금융계좌 신고제, 해외투자관련 자료 제출 등 각종 제도의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늘린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역외탈세 조사추징세액은 6조2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추징세액은 1조3000억원이었는데, 2008년 추징세액 대비 약 8배나 늘었다.
전담조직 운영, 정보역량 강화, 제도 인프라 구축 등 대내적으로 세정역량을 집중한 성과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포함한 역외탈세 방지활동은 국회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국세청은 법과 원칙에 따라 더욱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외탈세에 대한 감시망이 강화되고 있으나, 정보교환 등 국제적 공조가 없이는 세원양성화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 이에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조세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들과 조세정보교환협정의 체결을 추진, 올해 1월 현재 바하마, 버뮤다 등 18개국과 이 협정을 체결했거나 체결을 추진 중에 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유럽 100여개의 국가와 금융정보 교환 시행도 앞두고 있다. 첫 번째 타겟 지역은 미국으로, 올해 9월부터 한국과 미국의 금융정보 자동교환 협정(FATCA)이 시행될 예정. FATCA에 대해 정치권에서 큰 이견이 없다는 점을 비추어볼 때 비준동의국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 협정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고객 중 미국인 또는 미국인 소유 해외사업체의 연말 계좌잔액이 5만 달러(법인 제한 없음)이상일 때, 해당 계좌와 관련된 정보를 국세청에 보고해야 한다. 국세청은 이 정보를 취합해 정보교환 형식으로 미국 국세청에 제공하고, 미국 역시 한국 납세자의 미국 내 금융계좌와 관련된 정보를 한국 국세청에 넘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