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배치가 마침내 결정됐다.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한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미동맹 군사력 보호를 위한 방어목적으로 2017년 말까지 사드 1개 포대를 주한미군사령관 통제아래 한미 연합작전에서 운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배치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성산리 일대 방공기지를 선정하고 성주에서 반경 200㎞이내 남한의 2분의 1에서 3분의 2 지역의 국민과 주한미군의 안전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면 경기 평택과 전북 군산 등 전국의 주요 미군기지는 모두 방어망에 포함된다. 하지만 반경 200㎞ 이상 떨어진 서울과 경기 북부는 방어 범위를 벗어난다.
사드 배치가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서울 등 수도권을 보호해야 한다. 사정거리가 200㎞인 북한의 신형 방사포로부터 사드기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나머지 인구 2500만 명이 사는 수도권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얘기다. 수도권 지역에는 사드 대신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사드배치가 결국 주한미군보호용이라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동맹국 미군과 그 시설 또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핵에 대한 주권적·자위적 조치'라는 사드배치가 한국의 심장부인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한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굳이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궁금해진다.
주한미군이 도입할 사드 1개 포대는 6기의 발사대와 48발의 요격미사일로 구성되며 재장전에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북한이 사드 체계를 무력화하기위해 48발의 사드 요격미사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몇 배에 이르는 미사일을 동시 발사할 경우 사드의 기술적 완전성을 100% 인정하더라도 이것만으로 북한 미사일을 막아내기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수도권은 아예 사드로 막을 수 없는 북한의 장사포 사정거리에 들어 있다.
때문에 사드 배치가 한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전략 이익 보호 차원, 즉 동북아에서 미국 항공모함과 군사기지를 겨냥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 미사일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2014년 6월 처음 제기했다. 우리 쪽에서는 사드가 한국의 안보보다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 편입이라는 관점에서 논란이 일었고, 미국 내부에서도 의견조율이 되지 않아 우리 당국은 미국 측의 '요청이 없으니 협의가 없고 따라서 결정도 없다'는 이른바 '3No'로 얼버무려왔다.
우리당국의 '3No'로 진전이 없자 미군이 자체 배치 추진에 나섰고,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성공, 중국 동북 지역에 '항모킬러' 동풍-21 미사일 배치, 남중국해 사태와 관련한 대중 압박 강화 욕구 등이 맞물리면서 사드배치가 급물살을 타게 된 모양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사드 배치를 통해 한반도를 MD체계에 편입시켜 전초기지로 삼으려 한다며 한국이 독립국가로서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우리를 압박해왔다.
사드의 최대 사거리는 200킬로미터이고 최대 요격 고도가 150킬로미터여서 고도 800킬로미터 안팎으로 비행하는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 특히 미국이 두려워하는 중국의 '둥펑-21D' 등은 요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면 현재 일본 교토(京都)에 설치된 레이더보다 미사일 및 항공 전력 움직임을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보다 조기에 탐지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이 교토에 레이더가 배치되었을 때보다 한국 내 사드 배치에 더욱 민감하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를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에 비유하며 경제 제재와 군사적 타격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확대는 물론 북한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는 등 상응조치는 심상치가 않다.
그렇다고 사드 배치 결정을 이제 와서 되돌릴 방법은 없어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고, 미국이 자기네 비용으로 주한미군에 갖다놓겠다는 사드를 대놓고 반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나라 안보와 핵우산, 전시작전권까지 동맹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어쩔 수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드배치가 종착점이 아니라 더 큰 안보불안의 시작이란 점이다. 사드배치가 안정화 될 때까지 중국 및 러시아와의 마찰을 감수해야한다. 사드반대를 외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국내 갈등뿐 만 아니라 부지선정에 따른 지역갈등을 해소하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당장 한국은 부지만 조성해주면 된다지만 몇 년 후 미군이 사드 인수를 제안했을 때 이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사드 배치로 인해 '북핵 대 평화', '북한 대 세계'의 대립구도가 '북핵 대 사드', '한·미·일 대 북·중·러' 로 프레임이 바뀌면서 한반도가 신냉전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역대 최상이라는 한중관계는 최악으로 내닫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우리의 특성상 미 중 사이의 전략적 균형 추구는 필요불가결하다. 우리가 미국에 치우쳐 한․미․일이 한 묶음이 되면 중국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기득권이 강화되면서 남북 대치상황도 고착화된다. 우리가 주도하는 대북공조 대열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시키면서까지 유엔 '끝장결의'를 이끌어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외교 또한 갈 길을 잃게 된다. 북한을 국제고립에서 탈출시켜 줄 개연성이 높아지고, 북핵을 현실로 인정하는 구도가 자리 잡을 위험성도 커졌다.
중국의 적극적인 제재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사드 배치를 전략적 카드로 활용했어야
했다. 수도권도 보호 못하는 사드를 들여오느라 공들여 온 북핵 국제 공조 체제를 이완시키고 국론 분열에다 장기적으로 막대한 외교․경제적 대가를 자초하게 됐다.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교환' 제안에 한국이 사드배치로 대응한 것은 북핵 문제와 평화통일에서 중국의 역할공간을 부인하겠다는 위험신호로 읽힐 수 있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움직일 공간을 확보 못하면 남북 관계는 미-중 관계에 연동된 하위 변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 국가안보와 국익에 이보다 더 큰 손실은 없다.
진정한 안보는 군사대치가 아닌 협상과 외교의 복원에서 찾아야한다. 박근혜정부에서 어떤 전략적 혜안이나 외교안보의 큰 그림을 읽을 수가 없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지역갈등에 매몰돼 문제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 큰 한반도 안보불안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