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나라의 兵(병) 食(식) 信(신) 중 으뜸이 信이라고 했다. 기업회계에 대입하면 兵은 물적자원(생산설비), 食은 인적자원(직원급여)이고 信은 신용자원(대외믿음)으로 비견된다. 국가도 국방·일자리·국민지지의 3대 축으로 돌아갈 뿐 아니라, 기업도 기업내 임직원과 생산기계와 외부고객 등 이해관계자의 3개 축이 핵심이다. 임직원과 원자재 및 기계가 있으면 제품은 생산되지만, 외부 신뢰와 단골고객이 없으면 물건이 팔리지 않아 기업은 파산에 이른다.
기업은 외부의 불특정다수 이해관계자, 예를 들어 소비자고객·납품자·유통업자·은행등 채권자, 주주 등의 투자자, 증권회사, 국가(국세청), 신용평가회사,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신용을 얻어야 계속기업이 될 수 있다. 외부믿음이 약하면 녗년 간은 지탱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국제적 신용을 얻어야 가능하다.
기업이 외부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저비용이면서 유일한 방법은 투명회계와 이를 보증하는 공정한 외부감사이다. 투명회계와 재무제표작성은 기업 스스로 하는 것이고, 기업이 본질적이고도 제1차적 책임을 진다.
그러나 기업스스로 투명하다한들 이는 공염불이다. 건강진단서도 믿을만한 의사가 검진을 한 후 발행해 준 것이어야 믿음이 간다. 기업의 투명회계재무제표도 외부의 제3자 독립감사인이 공정한 회계감사를 수행한 후 공시되어야 최소한이나마 믿음이 시작된다. 그런데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회계투명성 꼴찌국가이다. 한국기업의 재무제표와 외부감사보고서가 믿을만하지 않다는 뜻이다. 국제간 상거래의 가장 기본인 신용에서 우리는 최저수준이다.
한국의 금융당국과 회계사들과 회계법인(감사인)들은 매우 노력하는 편이고, 자질도 대단히 우수하다. 국회와 정부도 회계투명성 개선의지도 강하다. 회계투명성 제도개선안과 법령개정안이 자주 발의되고, 공청회·토론회도 연속으로 열린다.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회계사기가 발생한지 3년이나 되어가는데, 아직 이렇다할 대안이 확정되지 못했다. 서로 논란만 벌이다 대통령탄핵사태와 조기대선국면에 그대로 묻히는 듯하다.
기업투명회계와 공정감사는 대선공약의 제1순위가 되어야 한다. 국가재정세금의 대부분을 기업이 납부하고, 일자리도 결국 기업이 창출해야 오래가는 것이다. 결국 국가세금과 국민월급의 대부분이 기업에서 나오므로 기업의 투명회계와 투명성 보증수단인 공정감사는 헌법상 납세의무보다도 선행되는 공법제도·공익의무이다.
촛불민심과 경제적 약자들 대부분이 정부와 대기업을 불신하고 있다. 국가와 각 행정부의 세금사용과 국가재무제표 및 대기업의 재무제표도 잘 안 믿는 듯하다. 거대상장기업의 조단위 분식회계와 거액공익피해가 3년 단위로 터져 나온다. 외부감사인도 피감기업이 혈·지·학·연고자 중에서 입맛대로 고르고, 지급하는 감사보수도 최저수준이니 품질있는 감사보고서가 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선량한 모든 상장기업이 재무제표를 투명하게 작성하고, 대부분 감사인이 충실히 감사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터져나오는 대형분식회계로 인해 모두가 불신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량한 기업과 선량한 감사인은 툭하면 물을 흐리는 거대 회계사기 도둑들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는 꼴이다.
따라서 현행의 회계와 감사제도는 환골탈태할 필요가 있다. 현행의 자유선임감사제도를 일시적이라도 한번 지정감사공영제로 바꾸어 보아야 한다. 고난도의 인공지능이 아니라도, 거대기업은 대형회계법인에, 특수업종과 어려운 외감대상기업은 우수한 회계사에게 균형배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상장기업을 규모 순이나 난이도 순에 따라, 회계법인규모나 소속회계사 숫자 및 감사능력·품질 순으로 배정하면 '아무나'에게 감사받게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중소형회계법인 소속회계사의 대부분이 대형회계법인에서 5~10년 이상 훈련된 경력회계사들이므로, 각자의 감사자질은 대형회계법인과 대동소이하다. 회계사들 사이에 '아무나'는 없다고 봐도 되고 걱정 안해도 된다.
감사인을 금융당국이 배정하면 피감기업 입장에서 연고선택권과 가격협상력을 상실하는 불만이 있다. 이 문제는 각 기업의 자산별, 매출액별로 일정비율(자산규모 100억원 기준 0.2%에서 체감율로 내려감. 삼성전자는 약 0.001%라 함)로 하면, 거의 대부분 기업은 적정균형보수만 부담하면 될 것이다. 지정감사공영제도하에서는 감사보수도 법정표준화될 것이므로, 억울한 부담이나 덤핑도 발생되지 않아서 모두가 편안하다.
금융당국도 감사인 배정의 정부책임문제를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투명회계의 1차적 책임이 기업이고, 감사인이 균형배정되면 소신있는 감사행위와 공정한 감사의견으로 웬만한 분식회계사기는 대부분 잡아낼 것이다. 감사증거가 없거나 불분명한 부분은 제대로 못 봤다고 지적·경고할 것이다. 또한 지정감사인이 분식회계로 인한 부실감사의 제2차적 책임도 지고, 민형사 소송도 부담한다. 단 한 건이라도 부실감사하면 감사인 배정대상에서 원천배제하는 징계를 내리면 그 회계법인은 곧바로 파산한다. 분식회계사기와 부실감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징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