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은 스스로 부패하여 자멸함은 만고의 진리이다. 공룡은 멸종했지만, 개미는 농약을 살포해도 무수히 건재한다. 대통령탄핵사태도 국민의 민주화 의식에 비해 대통령 권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특히 대통령을 견제하는 장치가 없었다.
조선시대에도 사간원은 왕명을 비판하고, 바로 옆의 사관(史官)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대로 기록했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평일의 많은 시간을 관저에 머물렀고, 비서실장도 몇 일간 못 뵌 적도 빈번하다 했다. 때로는 어디서 무엇하는지도 모른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더 큰 문제점은 대통령이 최순실 등 비선실세들과의 국정농단을 꽤 오랫동안 해왔음에도 수백명의 청와대 비서들, 많은 여당 국회의원들, 직접 보고 할 일이 많았던 장차관들이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일부 알거나 느꼈을 텐데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류진룡 전 장관 같이 바른 말을 몇 번 하다가는 해외출장 중 어느 날에 갑자기 경질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의 인과관계를 잘 알게되는 주변 당·정·청 관계인사들은 더욱 굳게 입을 다문다. 대통령이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소통부재에 대해 “직접 대면보고 해야 되느냐”고 반문하니 아무런 반응이 없기도 했다.
IMF외환위기를 촉발한 1998년의 대우그룹부터, 2002년의 SK글로벌, 2012년의 STX조선해양·저축은행사태, 2013년의 동양그룹사태와 모뉴엘분식회계 및 대우건설분식, 2014년부터 2016년의 대우조선해양의 대형분식회계사기는 종치고 알려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는 점에서 대통령 탄핵과 꼭 닮았다.
기업의 회계정보는 민주적 SNS 등으로 완전 공개될 수 밖에 없는데도 거액분식금액을 숨겼고, 절대권력을 가진 최고경영자와 CFO 실무책임자가 임의회계조작을 자행하였다.
2014년부터의 조선업계 불황으로 대우조선해양의 회사경영실적이 나빴을 텐데도 초과이익달성으로 성과보상금이 나왔다. 이에 대해 다른 경영자나 감사위원회가 이상하다고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이들의 월급이 회사에서 또박또박 나오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CEO가 인사권을 행사하니, CEO 견제세력은 채용될 리 없고 기존 중역들도 알아서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다 외부감사인도 분식회계를 주도한 CEO와 CFO 등이 연고관계와 최저가로 선임하고, 당년도 감사보수도 지급하고, 다음연도 감사계약의 계속연장여부도 결정하니 회사가 제멋대로 제출하는 자료만 보고는 적정의견을 낸 것이다.
순이익과 현금흐름이 잘 안 맞는다고 추가정밀자료를 요구하는 현장회계사는 회사요청으로 어느 날 갑자기 교체되고 이런 과정을 지켜 본 다른 회계사는 아예 입을 닫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지부지부지시지야(智智不知不知是知也)라는 공자 말씀은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란 뜻이다. 청와대 비서들, 정치인·공직자·대주주·경영자·회계사들이 모두 아는 것을 안다하고 외부에 알렸으면 대통령 탄핵과 대우조선해양 거액분식은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과 금력 앞에 맹종하면 국가나 기업이건 모두 자멸할 수 있다. 특히 회계투명성에서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이란 본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 환경이다. 이를 위해 적어도 상장법인이라도 외부감사의 전면지정제 등의 감사공영제도입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회계감사전면지정제가 아닌 부분확대는 회계사의 혈·지·학연 등 관계형성과 미래연고쌓기 등 또 다른 외부감사인의 예속과 종속을 낳는다. 그래도 일부 대기업이 감사공영제를 반대한다면 이번의 외감법 전면개정에 맞추어 다음과 같은 점이라도 긴급보완되어야 한다.
첫째, 분식회계사기 주체인 악덕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자·실무자처벌을 최대한 강화해야 한다. 분식회계로 거대기업이 무너져서 공익피해를 일으키면 분식회계로 인한 모든 이익은 악덕기업 운영자들에게 이미 모두 귀속된 뒤이다. 해당 기업은 거액결손으로 무너졌으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봤자 나올게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정부의 공적자금만 더 들어갈 뿐이다.
둘째, 표준감사보수가 법제화되고 외부공탁되어야 한다. 외부감사는 국가급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유선임은 정신적 독립성을 침해하고, 무제한 염가경쟁은 경제적 독립성마저 상실시킨다.
셋째, 악덕기업분식회계에 대한 내외부고발자 보호와 포상을 대폭 강화해서 일생 왕따피해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넷째, 기업내부회계인력을 강화하고 내부감사와 감사위원회에는 회계사 등의 전문인력으로 채워야 한다. 무지하면 용감해서 분식회계인지도 모르고 서명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견제하고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감사계약시점도 현재의 결산말일 후 4개월내에서 직전년까지로 앞당겨져야 한다.
여섯째, 회계법인 이사 외에는 회계감사할 수 없고 소속공인회계사를 보조자로 한다는 내용의 공인회계사법 제34조도 개정되어야 한다. 법대로라면 현장감사담당자의 대부분, 특히 대형회계법인 소속회계사의 90%가 보조자 신분으로 감사를 수행한다.
이들은 회계감사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이 회계사법 제34조로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현장감사시 감사자료를 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보고 듣고 입증한 대로 소신의견을 피력하지도 못한다. 회계법인 상부파트너·이사지시만 따를 뿐이다. 그러니 책임감과 소신도 자연스럽게 반납하고 산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자조섞인 한탄이 “공인회계사는 회계감사자격이 없다”로 패러디해야 할 판이다. 박윤종 안세회계법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