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할까? 있으면 좋지만 '반드시'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한편으론 없어도 좋지만 자기 브랜드로 장사하면 정말 재미있다.
우리는 필맥스가 조만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맥스라는 브랜드가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를 기대하면 여러 가지 가능성들에 대하여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든다.
아니, 그 제안을 받아들일만한 사정이 아니었다. 그건 나 혼자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필맥스 파트너들이 받아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우리는 '필맥스'라는 종교에 몰입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에 우리는 우리의 신을 만날 거라는 확신에 차있었다.
2002년 핀란드에서 파트너들과 브랜드를 통일하고 Feelmax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한 이래 '잘했다'라고 한 적도 있지만, '내가 왜 그랬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통상적인 마케팅 교과서에서는 자체 브랜드를 가질 것을 권한다. 그리고 나도 가능하면 고유 브랜드로 자기 장사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브랜드를 가지는 것에는 적지 않은 함정이 숨어있다.
브랜드라는 것이 소비자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는 데, 사람들에게 믿음을 받는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 노력 그리고 비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하여는 수많은 유혹을 넘겨야 한다.
“필맥스 제품이 좋군요. 저희 회사에 저희 브랜드로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수량은 꽤 됩니다.” 이런 제안이 오면 대부분의 경우 무시하기 쉽지 않다. 브랜드가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건 소비자나 유통망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전략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나의 잠재적 바이어들도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이어를 만나면 언제나 그런 문제가 나온다. “Hey, 홍! 너네 이름으로 수출하겠다고? 난 나의 이름으로 수입을 하고 싶은데” 그럼 바로 선택의 순간이 오고, 그 선택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런 시점에서 “아니, 난 나의 이름으로만 비즈니스하겠어, 미안, 바이어!”라고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수많은 신발회사들이 여전히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을 뛰어넘는 브랜드로 장사를 하고 싶어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브랜드는 없다. 한국에서도 여러 대기업에서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하물며 중소기업에서 자체 브랜드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드물다.
그건 브랜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하여는 마케팅비용은 물론이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실력이다. 설령 내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들이 많아야 할뿐더러, 내 브랜드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도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소비자들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전에 듣던 브랜드중 사라진 것은 많지만, 새로이 생겨난 브랜드명은 듣기가 어려진 이유이다. 그런 와중에 난 내 제품의 콘셉트, 품질, 유통라인 그리고 가격 등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요즘같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그게 가능할까?
나의 제품이 괜찮다고 인정되면 난 편협한 유통라인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다양한 유통라인과 훨씬 더 많은 바이어를 만날 수 있다. 정말로 내가 제품을 잘 만들고 시장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바이어와의 협상력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실제 영업이나 기업관리에서도 편할 수 있다. 유명인의 잘못은 만회할 틈도 없이 심각한 타격을 주지만, 무명인에게는 얼마든지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관용이 주어진다. 그만큼 브랜드가 갖는 잇점만큼이나 위험도 크다는 이야기이다.
팔수만 있다면 내 브랜드이면 좋고, 상대의 브랜드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기분은 좀 나쁘고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지만 장사는 장사다. 대신 OEM (주문자상표 부착생간) 보다는 ODM (제조업자 개발생산)도 괜찮다.
어쩌면 브랜드란 연예인이 말하는 덧없는 인기일 수도 있다. 자기 이름을 갖고 장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이익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멋있고 재미있게 장사를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아주 오래 살아남거나, 아주 빨리 사라지거나. 그건 브랜드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선택이다. 그것도 국제적인 시장에서 브랜드를 갖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걸 감내할 자신이 있는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