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女배우 4인방 농익은 연기, 가을 적시다

김해숙 '희생부활자'·김혜수 '미옥'서 연기 변신 '감칠 맛'
나문희 '아이 캔 스피크'·고두심 '채비' 감동코드 촉촉

올해 한국영화의 흥행 열쇠는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남자배우들이 쥐고 있었다. '택시운전사'의 송강호,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경구·김남길, '군함도'의 황정민·소지섭, '박열'의 이제훈 등이 상반기 충무로를 접수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 정치, 사극, 액션 등의 장르가 주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남자배우들이 힘을 발휘했던 것.

그러나 가을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판도에 균열을 일으키는 중견 여배우들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아이 캔 스피크'(9월 21일 개봉)의 나문희, '희생부활자'(10월 12일 개봉)의 김해숙, '채비'(11월 2일 개봉)의 고두심, '미옥'(11월 9일 개봉)의 김혜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여배우들이 주인공이다. 최근 몇 년간 충무로에 여배우 중심의 작품이 거의 없었던 만큼 이 배우들이 보여주는 깊이 있는 연기는 우리나라 영화계에 새로운 색감을 입힐 것으로 기대된다.

나문희는 '거침없이 하이킥', '너는 내 운명'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국민엄마'로 불리는 대표 중견 여배우다. 그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민원 신청만 8000건을 해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로 오른 할매 옥분을 연기했다. 옥분과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영어를 배우며 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밝힌다는 이야기다. 나문희와 이제훈은 43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의외의 케미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문희는 직접 쓴 편지를 통해 "시나리오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참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또 희망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잘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실제로 2007년에 미국 청문회장에서 연설하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고 영화를 대하는 특별했던 태도를 밝혔다.

이 작품은 나문희의 열연에 힘입어 지난달 21일 개봉한 뒤 손익분기점인 180만을 훌쩍 넘은 314만 명(10월 15일 기준)을 돌파했다.

◆ '해바라기'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래원과 '희생부활자'로 돌아온 김해숙, '채비'를 통해 '국민엄마'로 돌아온 고두심.

김해숙은 영화 '해바라기'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래원과 '희생부활자'를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피살된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복수를 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극중 국내 첫 희생부활자(RV) 사례가 된 엄마 명숙(김해숙)은 아들(김래원)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모성애와 희생, 복수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미스터리한 캐릭터에 사실감을 불어넣었다.

김해숙은 하반기 이뤄진 중년 여배우들의 활약에 대해 "여배우들이 할 작품이 많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중견 여배우로서 관객들과 만나게 돼 행복하다"며 "저희들의 행보가 후배 여배우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다진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브라운관에서 엄마 역할을 통해 시청자들을 울렸던 고두심도 이번엔 영화 '채비'를 통해 감동을 선사한다. 세상을 떠나야 하는 순간을 앞두고 말썽꾸러기 아들과 이별을 준비하는 어머니 '애순'을 연기한 그는 이번에도 자상한 어머니 연기를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굿바이싱글'에서 푼수끼 넘치는 여배우로 변신해 사랑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던 김혜수. 이번에는 느와르 영화 '미옥'을 통해 번뜩이는 카리스마를 보여줄 예정이다. 개봉 전 공개된 스틸컷에서 김혜수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은발의 짧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현정으로 분한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어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한 배우 전미선도 올 가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다. 그는 다음달 2일 개봉하는 '내게 남은 사랑을'에서 가족을 위해 악착같이 살림하는 엄마 이화연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는 대한민국 대표 가장과 그의 가족이 비로소 하나가 돼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전미선은 늦게까지 술을 먹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폭풍 잔소리는 물론 매일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는 등 리얼한 현실 엄마의 모습과 심리를 면밀하게 보여줘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할 예정이다.

중년 배우들의 잇따른 스크린 컴백에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는 "한국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중년층이 한국 사회의 중심축으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진 부분"이라며 "주 관객층이 중장년층인 것도 있겠지만 지금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라고 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