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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회담]

1971년 8월부터 47년간의 남북회담 역사

조세일보 / 허헌 기자 | 2018.04.26 17:01

판문점 남측 경계선에서 바라본 북측 판문각. 70년 분단의 상징 (사진=DB)

◆…판문점 남측 경계선에서 바라본 북측 판문각. 70년 분단의 상징 (사진=DB)

70년대부터 남북간 대화노력 시작...'7.4 남북공동성명'은 최초 합의문서

남과 북은 오랜 분단 시간동안 많은 갈등을 겪었으나, 분단의 비극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대화와 교류노력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상호 간의 신뢰를 쌓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남북간 대화 노력은 70년대부터 본격 시작됐다.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이 적대와 대립 속에서도 걸어온 대화의 여정 위에 세운 굵직한 이정표다.

60년대까지 냉전의 영향 아래 대화에 나서지 못했던 남과 북은 7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 화해·협력 분위기가 도래하자 대화의 물꼬를 텄다.

최초의 남북대화는 1971년 8월 20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의 파견원 접촉이었다. 이듬해인 1972년 8월부터 1973년 7월까지 이산가족 주소와 생사확인 등 5개 항을 의제로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모두 일곱 차례 열렸다.

1972년 5월 남북 대표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회담을 가진 결과, 분단 이후 최초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됐다.

성명에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 통일 3원칙을 비롯해 상대방 중상 비방 중지, 군사 충돌 방지 조치, 서울-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냉전체제를 기반으로 한 적대적 대결구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남북관계 진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80년대 초반 남북관계는 위기를 겪었으나 중반에 들어서면서 남북 대화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경제·체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1984년 9월18일 정부는 북측의 대남 수해물자 제공 제의를 받아들였다, 분단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인도적 지원 합의였다. 같은 해 11월 ˂남북경제회담˃을 시작으로 ˂적십자 회담˃과 ˂국회회담˃ 예비접촉, ˂체육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이 열렸다.

1985년 5월 27일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열렸다. 그해 9월20일부터 나흘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서울·평양 동시 교환 방문이 진행되면서 남북 주민 교류가 이뤄졌다.

80년대에 남과 북은 적대적 관계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했으며 이전 시기보다 대화 채널을 다양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90년대 초 탈냉전의 흐름에 힘입어 남북관계는 큰 진전을 이뤘다. 1990년 9월 분단이후 첫 총리급 회담인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이후 여덟 차례에 걸친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1992년 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다.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상호체제 인정·존중, 정전상태의 평화상태 전환 노력 등을 합의했다. 아울러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화회, 불가침, 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 발효했다.

특히 남과 북은 1994년 7월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남과 북은 2000년 6월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노력,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 확대 등을 다짐한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특히 남북 정상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점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통일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겠다고 했다.

남북한이 당장 제도적·법적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현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사실상의 통일을 실현해 나가는데 합의한 것이다.

2007년 8월 8일, 남북은 2007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열흘 뒤 북한이 수해로 인해 회담일정 연기를 요청해왔다. 두 번재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회담에서 정전체제의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직접 관련된 3자 혹은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 내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협력해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더불어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사업들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정상회담 결과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정상선언)˃이 채택됐다.

˂10.4 정상선언˃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세부사항에 대한 구체적 이행 방안을 담은 합의서였다.

남북은 이제 하루 밤만 지나면 다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은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꼭 성공해야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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