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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사회발전을 이끄는 상속제도는 불가능할까?㊦

조세일보 / 안광복 | 2019.09.11 08:20

"4배 차이까지 불평등을 허용하라"

불평등은 노력을 이끌어 내는 묘약이다.

남과의 비교만큼 사람을 긴장시키는 것도 없다. 남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은 더 애써야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남보다 나은 처지에 있다는 뿌듯함은 쏟은 노력에 주어지는 최대 보상 가운데 하나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재산 격차는 4배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배 차이 정도면 치열하게 노력해서 따라잡을만하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주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한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플라톤은 4배를 초과한 몫을 국가나 신전에 기부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공동체 안에 분란을 일으켜 마침내는 내전(內戰)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높은 상속세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곤 한다.

갈등을 줄이고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이 가진 자의 재산을 국가가 빼앗아 부족한 측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격차는 나날이 커져만 간다.

무엇이 문제일까? 앞서의 논리에 뭔가 빈틈이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는 로빈후드가 아니다"

천명(天命)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등장한 세력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다. 그들은 이전의 권력자들이 '하늘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기에 이제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세습은 주로 피로 맺어진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그들의 통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권력을 피붙이가 넘겨받았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들이 지배받는 자들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다스렸다면 별다른 반발이 일어날 리 없었다.

이 경우는 '천명'을 제대로 이어받는 것이었으므로 오히려 사람들은 큰 소란 없이 '정권교체'가 마무리됐다며 반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자들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세상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쪽으로 권력을 휘두른다면 어떨까?

당연히 여기저기서 과연 정당한 권력인지를 따지는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경영권이나 재산의 상속도 다르지 않다. 상속의 가치와 의미는 물려받는 이에게서만 그치지 않는다.

상속이 가진 자들의 이익을 확실하게 지키는 수단이기만 하다면 당연히 반발이 인다. 하지만 상속이 사회 혼란을 막을 뿐더러 사회 전체에 이로운 쪽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그래도 지금처럼 사람들 대부분이 세습을 죄악시할까?

상속세를 거두는 국가는 로빈후드가 아니다.

부자의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상속세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상속세제는 가진 자의 재산을 빼앗기보다 그들의 재산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틔어주는 쪽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발렌베리 그룹의 경우"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라는 유명한 이론을 펼쳤다.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부(富)는 먹고사는 문제와 상관이 없어진다. 자신이 남다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더 좋은 옷과 집, 차를 소유하기 위해 재산이 필요할 뿐이다.

사실 중산층 이상인 이들에게 부에 대한 욕구란 인정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부를 지키고 물려주려는 욕망을 인정과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승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은 국민총생산(GN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기업 집단이다. 놀랍게도 발렌베리 가문은 이미 150년 넘게 5대에 걸쳐 기업들을 소유하고 경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웨덴에서 발렌베리가(家)를 '족벌'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발렌베리 가문은 공익재단에 참여할 뿐 기업을 직접 다스리지는 않는다. 이 공익재단들이 발렌베리 그룹의 경영을 다스리는 모양새다.

나아가 발렌베리의 공익재단들은 수익금의 80% 이상을 기초학문 연구, 복지 사업 등에 투입한다. 가문의 전 재산을 공익을 위해 기부하고, 댓가로 사회적인 존경과 명예를 받는 모양새다.

앞서 말했듯, 세습이 항상 나쁘지만은 않다. 세습은 불안정성을 최소화하여 사회 발전을 이끄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왜 발렌베리같은 가문이 없을까?

우리 사회에서 세습은 언제나 절대 악인듯 비난 받을 뿐이다.

상속과 세습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도 가운데 하나다. 상속이 사회발전을 이끌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 볼 일이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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