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촉발시킨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자. 한 언론은 지난 14일 정부가 소위 '유리알 지갑' 으로 일컬어지는 근로자들로부터 징수하는 '갑종근로소득세' 의 세수를 당초 잡았던 예산(9조5000억여원)보다 26%나 늘린 12조321억원을 걷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에 정부와 여당은 대번에 '발끈' 하고 나섰다. 정부와 여당은 이례적으로 합심해 언론이 '객관적이지 않은 통계수치를 왜곡해 표현했다' 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와 여당이 언론 보도와 관련해 문제시한 것은 갑근세 증가의 '기준점'을 무엇으로 삼았느냐 하는 점이다. 일부 언론은 당초 정부가 잡은 올해 예산안을 기준으로 삼아 수치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올해 추경예산안에 포함된 징수전망액(10조7029억원)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언론과 정부·여당의 다른 기준점 설정으로 인해 세수 증가폭이 각각 12.4%, 26%로 설정되는 '수치의 오류' 가 발생한 셈이다. 이 같은 수치의 오류가 '뜻하지 않은' 논란을 촉발시킨 셈.
그러나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무엇을 기준점으로 설정해 수치를 이끌어냈냐는 문제는 차후의 문제다. 분명한 것은 갑근세수가 내년에 확실히 '늘어난다' 는 점이다. 또 증가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돌이켜 봐야 한다는 점이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갑근세 증가의 이유를 "학원의 수강생이 늘어나 학원수입이 늘어나는 이치" 라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매년 일정 수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근로자의 수가 늘고 기존 근로자의 소득이 늘기 때문에 세수는 당연히 늘어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마치 정부가 갑근세를 인위적으로 인상한 것처럼 인식해서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말이다. 경제현상에 따른 '자연스런 증가' 로 인식하는 편이 합리적이며 이 점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정부가 근로자들로부터 세금(갑근세)을 초과징수했다는 지적을 담은 언론의 보도가 있어 왔다는 점. 당시 언론보도에 대한 정부의 해명태도와 지금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따져보면 해답이 나온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거대 감세안을 당론으로 밀고 나오는 한나라당과 지루한 '감세논란'을 계속하고 있다. 가뜩이나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대대적 증세' 라는 단어 자체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송두리째 앗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감세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이 같은 언론보도로 인해 어부지리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정치적 승리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호들갑을 떨며 갑근세 논란을 진화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란 지적이다.
이처럼 각자 '할 말 있는' 정부와 여당, 언론이 벌이는 진실게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무엇이 최후의 진실로 남든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수치의 오류, 정치적 계산 등이 융합된 갑근세 논란의 실체는 별다른 실익이 없는 '오십보 백보' 논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작 세금 내야하는 근로자들의 눈에는 그저 '진흙탕' 싸움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