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조세일보와 인터뷰
"주주행동주의 목표는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금융지주 사외이사에 은행 전문가 배제 말아야... 전문성이 곧 독립성"
"정부가 소유분산기업 경영 관여하는 건 거버넌스 어긋나"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7일 거버넌스포럼 사무실에서 조세일보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유분산기업의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는 "기계적 독립성을 추구하다가 전문성을 놓치고 있다. 실무에서 전문성을 쌓은 인물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라도 사외이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행동주의펀드들의 주주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 거버넌스(기업 지배구조)가 일대 도약한 원년이라 생각한다. 주주행동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다. 이사회가 특정 세력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주와 회사 전체 이익을 위해 복무하도록 하는 거다.
가장 중요한 전략이 '3%룰'에 의한 감사 선임이다. 그동안 기관과 연기금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 드디어 이사회 진출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이사회가 공정성과 독립성을 복구하며 '정상화'됐다고 평가한다. 이사회가 복구되면 훼손됐던 주주가치가 재평가되고, 이렇게 올라간 주가는 다시 내려가지 않을 거다.
금융지주 이사회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나.
= 금융지주는 자산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런데 사외이사로 추천되는 분들이 대부분 변호사나 교수다. 연구한 분들도 한 축을 담당해야겠지만 실무를 경험하고 전문성을 갖춘 분이 너무 부족하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근무했던 분은 현 경영진과 관계가 있다고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 원천적으로 배제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문제다.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지 않나.
= 법규상 배제해야 할 후보는 당연히 배제된다. 탁월한 전문성이 있는데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걸 말하는 거다. 전문성이 독립성의 핵심이다. 실무에서 성과를 내고 전문성을 쌓은 인재가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사외이사가 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거버넌스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주주가 가장 그 기업의 이해관계에 일치돼 있다. 주요 주주가 다 1명씩 (이사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사회에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균형 있게 추천하고 주주들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의 거버넌스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 소유분산기업은 지배주주가 없어 특정 세력이 이사회의 과반수를 선임할 수 없는 기업을 말한다. 그렇다고 '주인이 없는' 기업은 아니다. 주주 전체가 주인이다.
문제는 정부가 너무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거다. 소유분산기업 CEO의 임기는 정권에 따라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서비스가 공공재적 성격이라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건 사업적 측면이다. 거버넌스 관점에서 보면 주주가 아닌 사람이 거버넌스에 직접 개입하는 건 문제다. 이제는 정부가 손을 떼고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 프로세스가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지켜봐주길 바란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 자본시장 개혁에 있어 역대 정부 중 가장 적극적이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다드(국제표준)에 비춰보면 많이 미흡하다. 일례로 의무공개매수제도의 경우 90년대 초반 '50%+1주' 제도가 폐지됐다가 최근 부활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10대 경제대국으로 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마음을 내서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만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도입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100%를 공개매수해야 한다는 건가.
= 그렇다. 100%를 인수하지 않고도 지배주주가 돼서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국뿐이다. '50%+1주'만 공개매수하면 나머지 주주는 지배주주와 같은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한샘이나 SK네트웍스 사례를 보면 지배주주의 주식양수도 공시 이후 주가가 예외없이 폭락했다. 새로운 지배주주가 그럴 의도가 없다 해도 시장은 구조적 리스크를 주가에 반영하게 된다.
상장기업 합병비율을 시가로 산정하는 문제를 지적해왔다.
= 한국 지배주주는 주가에 대한 경영책임을 지지 않는다. 얼마든지 실적을 통제해 주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가대로 합병하면 궁극적으로 합병비율과 교환비율을 통제해 이해상충 문제에 그대로 노출된다.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주주환원율이 70%라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같다고 알려진다. 70%보다 낮으면 기업가치 대비 주주가치가 디스카운트(할인)되고, 70%를 넘으면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되는 거다. 주주환원율 70%를 달성하기 전엔 시가가 아닌 공정가치로 평가해 합병해야 한다.
자사주나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은 어떤가.
= OECD 평균 주주환원율은 70%인데 한국은 30%에 못 미친다. 그나마도 삼성전자(50%)를 빼면 25% 수준이다.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으로 인정 안 되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만 보면 주주환원율이 25%도 안 된다.
배당은 주주총회에 가장 근접해 실시하는 게 맞다. 다행히 이제는 배당액을 공시하고 배당주주를 확정하도록 개선된다. 배당액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리게 돼 회사가 배당액을 늘리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본다. 주가가 내리면 배당액이 부족하다, 이사회 결정이 잘못됐다는 의미가 된다. 배당에 대해 시장과 즉각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에 회사는 배당액을 현실화해야겠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밖에도 모자회사 동시상장 금지와 자사주 마법 금지, 자진상폐 시 공정가치 적용, 증거개시제도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자본시장 개혁 입법 과제가 있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이사와 주주는 투자계약을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주주는 위험을 부담하고 이사는 자본을 조달해 회사를 경영한 뒤 주주환원한다. 어떤 나라도 '이사는 주주가 아닌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대법원은 '주주에 대해서는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듯한 판례를 여러 번 내놨다. 대법원이 스스로 잘 생각해서 판례를 변경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입법이 필요하다. 이미 존재하는 의무지만 법으로써 확인해주는 거다.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투자자와 기업에 한 마디 한다면.
= 주주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K-VOTE'를 검색하면 예탁결제원 전자투표 메뉴로 바로 접속 가능하다. 공인인증서 로그인하면 내가 어떤 주식을 갖고 있는지, 주주총회에 어떤 안건이 올라왔는지 다 나온다. 의결권을 적극 행사해야 주주가치가 오르고 주가도 오른다.
기업은 적극적으로 주주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주주가치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주주가치가 재평가돼서 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특정 시기에 유상증자를 할 때 훨씬 높은 밸류(가치)로 자본 조달할 수 있다. 주주가치를 챙기면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고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임직원, 협력업체, 나라 전체가 상생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K-VOTE' 홈페이지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