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 원색적인 막말·비방 ‘정당 현수막’ 난립 문제 심각
민주 “국힘이 법사위서 발목잡아”… 국힘 “책임전가 하지 말라”
◆…지난 4월 13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 앞에 여당의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 곽명곤 기자]
지난해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원색적인 비방이 담긴 정당 현수막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공직선거법상 현수막·벽보·인쇄물 금지 조항들이 효력을 잃으며 현수막 난립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정당현수막 문제 해결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여당이 법사위에서 발목 잡았다' '야당은 책임 돌리지 말라' 라는 등 서로에게 입법 공백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지난 4월 13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 앞. 삼삼오오 모인 대학생들이 도로를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도로 건너편을 보니 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민주당 소속 정서윤 동대문구 의원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에게 사과하세요!!"라는 내용으로 여당에서 내걸어 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해당 현수막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낀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육하원칙 중 '누가'만 언급하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해서는 설명조차 않은 채 "사과하세요!!"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동행했던 대학교 후배에게 '왜 사과하라는 거냐'라고 물어보니, 후배는 "민주당 소속 구의원이 (의회 활동 중에) '경외시'(경희대·외대·시립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말했다는데, 해당 발언을 사과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전후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사과하라!' '잘못했다!'는 식의 현수막들이 대학가에 걸려 있는 모습. 연일 무당층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청년세대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지, 혹은 정치에 대한 불신만 쌓는 계기가 될지. 정치권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듯하다.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에서도 청년층을 타겟으로 한 '규탄 현수막'을 목도할 수 있었다.
여당 측에서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통합·화합,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는데, 그 밑에 "청년 꿈 짓밟은 더불어코인당" 현수막을 함께 게시해 둔 것이었다.
현수막의 '더불어코인당'이라는 문구는 당시 '60억 코인 논란'이 불거졌던 김남국 무소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14일 자신이 촉발한 '코인 논란'을 두고 당에 더 부담을 줄 수 없다며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여당이 정당 현수막을 통해 "통합·화합"을 주장하면서, 정작 야당을 겨냥해서는 "청년 꿈 짓밟은 더불어코인당"이라고 맹비난한 것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형용모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더구나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도 앞서 아들이 코인업체 임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코인 관련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던가. 해당 사안을 두고 국민의힘이 "재야의 코인 고수"라고 치켜세웠던 가상자산 전문가 변창호씨(변창호 코인사관학교 운영자)는 지난 6월 12일 자신의 SNS에서 "김기현 아들, 불장 왔을 때 엑싯(exit)… 자주 쓰는 선동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원색적인 비방이 담긴 내용의 정당 현수막들을 보고 있자니 '민주주의 국가가 맞긴 맞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눈살이 찌푸려졌던 것은 왜일까.
여권에서만 시민들의 '시각 공해'를 일으키는 정당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1정문 건너편 인도. 이곳에 걸린 정당 현수막에는 윤석열 대통령, 일본 일장기, 후쿠시마 오염수 등을 합성한 이미지를 통해 "후쿠시마 '핵폐수' 정말 마실 수 있나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국민 대다수의 우려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시찰단 논란, IAEA 부실 검증 의혹, 후쿠시마 일일브리핑 부실 답변 논란 등을 일으킨 만큼 국민들의 정당한 비판을 수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 대표'인 한국 대통령을 일본 일장기와 합성한다거나, 대통령의 컵에 방사능 오염수를 따르는 듯한 이미지는 도가 지나쳤다고 판단된다. 이것은 정당한 비판의 영역을 넘어 맹목적인 비난의 영역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며 이미 원색적인 비방·막말이 담긴 정당 현수막들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회의 입법 공백으로 오늘(1일)부터 선거법상 현수막·벽보·인쇄물 금지 조항들까지 효력을 잃으며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2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정당 현수막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면서 법 시행 전 3개월 동안 6,415건이었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법 시행 이후 3개월 동안 14,197건으로 2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해당 보고서는 이어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옥외광고물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회와 정부는 시민들의 불편을 인지하면서 정당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옥외광고물 질서가 양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는 정당 현수막 문제를 두고 서로 상대방을 향해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김한규 원내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무분별한 홍보물들이 거리를 채워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개특위에서 어렵게 합의한 법안을 여당 법사위원들이 발목 잡아서 생긴 일이다. 모든 책임은 국민의힘에게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는 1일 성명서를 내고 "공직선거법 처리 불발을 국민의힘 탓으로 돌리는 민주당의 거짓 주장을 규탄한다"며 "여당 법사위원 일동은 입법 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 야당도 책임 전가를 멈추고 국회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고 반발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지난 4월 4일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으로 인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당 현수막 관리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여·야 지도부도 이날 토론회에 축사를 보내 정당 현수막 난립 폐단을 개선하겠다고 다짐한 상황이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이 "소리 지르지 말라!" "가볍기가 깃털 같다"며 옥신각신하는 정치권 상황을 국민들이 온라인 상에서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상에서 국민들을 직접 마주하는 장소에서는 정치권에서 격식을 차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한편 정치권에서는 정당현수막 문제 해결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여당이 법사위에서 발목 잡았다' '야당은 책임 돌리지 말라' 라는 등 서로에게 입법 공백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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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대학가, "민주당 사과하라"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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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로 건너편을 보니 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민주당 소속 정서윤 동대문구 의원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에게 사과하세요!!"라는 내용으로 여당에서 내걸어 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해당 현수막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낀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육하원칙 중 '누가'만 언급하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해서는 설명조차 않은 채 "사과하세요!!"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동행했던 대학교 후배에게 '왜 사과하라는 거냐'라고 물어보니, 후배는 "민주당 소속 구의원이 (의회 활동 중에) '경외시'(경희대·외대·시립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말했다는데, 해당 발언을 사과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지난달 8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 인근에 국민의힘의 정당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사진 = 곽명곤 기자]
약 3달 뒤, 같은 곳에서 또다시 '황당함'을 느꼈다. 지난 7월 8일 오후 한국외대 정문 인근에서 여당에서 걸어둔 "민주당 동대문구 구의원들께서 동대문구 청년 일자리 예산을 대폭 삭감했습니다. 청년이 떠나는 동대문을 만들려는 겁니까?"라는 현수막을 마주하면서였다. 강한 주장, 미흡한 설명은 여전했다.
전후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사과하라!' '잘못했다!'는 식의 현수막들이 대학가에 걸려 있는 모습. 연일 무당층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청년세대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지, 혹은 정치에 대한 불신만 쌓는 계기가 될지. 정치권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듯하다.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에 국민의힘의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 곽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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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대학가, "청년 꿈 짓밟아"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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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측에서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통합·화합,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는데, 그 밑에 "청년 꿈 짓밟은 더불어코인당" 현수막을 함께 게시해 둔 것이었다.
현수막의 '더불어코인당'이라는 문구는 당시 '60억 코인 논란'이 불거졌던 김남국 무소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14일 자신이 촉발한 '코인 논란'을 두고 당에 더 부담을 줄 수 없다며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여당이 정당 현수막을 통해 "통합·화합"을 주장하면서, 정작 야당을 겨냥해서는 "청년 꿈 짓밟은 더불어코인당"이라고 맹비난한 것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형용모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더구나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도 앞서 아들이 코인업체 임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코인 관련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던가. 해당 사안을 두고 국민의힘이 "재야의 코인 고수"라고 치켜세웠던 가상자산 전문가 변창호씨(변창호 코인사관학교 운영자)는 지난 6월 12일 자신의 SNS에서 "김기현 아들, 불장 왔을 때 엑싯(exit)… 자주 쓰는 선동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원색적인 비방이 담긴 내용의 정당 현수막들을 보고 있자니 '민주주의 국가가 맞긴 맞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눈살이 찌푸려졌던 것은 왜일까.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일대에 정부를 규탄하는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 곽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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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서만 '맹목적 비방 현수막' 설치하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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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1정문 건너편 인도. 이곳에 걸린 정당 현수막에는 윤석열 대통령, 일본 일장기, 후쿠시마 오염수 등을 합성한 이미지를 통해 "후쿠시마 '핵폐수' 정말 마실 수 있나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국민 대다수의 우려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시찰단 논란, IAEA 부실 검증 의혹, 후쿠시마 일일브리핑 부실 답변 논란 등을 일으킨 만큼 국민들의 정당한 비판을 수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 대표'인 한국 대통령을 일본 일장기와 합성한다거나, 대통령의 컵에 방사능 오염수를 따르는 듯한 이미지는 도가 지나쳤다고 판단된다. 이것은 정당한 비판의 영역을 넘어 맹목적인 비난의 영역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 "국회의원 수 100명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 곽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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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개정안에 여·야 '폭탄 돌리기'… 해결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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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정당 현수막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면서 법 시행 전 3개월 동안 6,415건이었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법 시행 이후 3개월 동안 14,197건으로 2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해당 보고서는 이어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옥외광고물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회와 정부는 시민들의 불편을 인지하면서 정당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옥외광고물 질서가 양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는 정당 현수막 문제를 두고 서로 상대방을 향해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김한규 원내대변인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무분별한 홍보물들이 거리를 채워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개특위에서 어렵게 합의한 법안을 여당 법사위원들이 발목 잡아서 생긴 일이다. 모든 책임은 국민의힘에게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는 1일 성명서를 내고 "공직선거법 처리 불발을 국민의힘 탓으로 돌리는 민주당의 거짓 주장을 규탄한다"며 "여당 법사위원 일동은 입법 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 야당도 책임 전가를 멈추고 국회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고 반발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지난 4월 4일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으로 인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당 현수막 관리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여·야 지도부도 이날 토론회에 축사를 보내 정당 현수막 난립 폐단을 개선하겠다고 다짐한 상황이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이 "소리 지르지 말라!" "가볍기가 깃털 같다"며 옥신각신하는 정치권 상황을 국민들이 온라인 상에서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상에서 국민들을 직접 마주하는 장소에서는 정치권에서 격식을 차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