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 만약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다면 그 이름을 모르거나 아직 명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천체에 존재하는 무수한 별과 미확인 원소, 이런저런 잡초 등 이름 없는 사물 따위들. 이름이 주어지는 순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가 된다. 이름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 다름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다. 우열을 가리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식별의 차원이다. 표지(標識)처럼.
개인이든 법인이든 사업을 시작할 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이름 짓기다. 이름과 명칭, 상호(商號) 등이 같은 듯 다르게 쓰인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름은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로 정의한다. 명칭(名稱)은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이름. 또는 그것을 일컫는 이름"으로 나온다. 상호(商號)는 "상인이 영업 활동을 할 때에 자기를 표시하기 위하여 쓰는 이름"이라고 달렸다.
전문자격사법에 따른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의 경우는 관련 법률에 근거하여 법인설립 시 정관에 "명칭"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해당 명칭은 사업자등록증 신청 시에 작성하는 법인명(상호)과 일치한다. 매년 전문자격사 수와 신규 법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유사한 명칭 사용이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한 혼란과 분쟁도 자연스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직역에 비해 법무법인의 명칭 사용에 따른 분쟁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법원은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는 변호사는 상인(商人)이 아니며, 변호사법 및 시행령은 변호사들의 영업권을 보호하거나 명칭으로 말미암은 부정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대법원 2007.7.26. 선고, 2006마334)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명칭 보호에 소극적이다.
분쟁이 늘어나자, 대한변호사협회는 2017년에 '동일 또는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경우 법률 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한다'라며 「법무법인 작명에 관한 제한 기준」을 회칙으로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세무법인의 경우는 더 심각해 보이지만, 양태가 사뭇 다르다. 세무법인이란 문자만 앞과 뒤에 있을 뿐 사실상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40여 곳 이상이 "세무법인 △△△"와 "△△△ 세무법인"처럼 유사성을 넘어 사실상 중복(동일)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실상만 놓고 본다면 대한변호사협회에 비해 한국세무사회가 명칭 보호를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알 길 없다.
아직 구체적인 명칭 분쟁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통해 해결되거나 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영세하고 실익보다는 현실적 번거로움이 크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쟁송에 회의적이다. 독립채산제 방식의 지점 형태로 운영되는 세무법인이 많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세무법인의 명칭 사용에 따른 분쟁이 그동안 이슈화되지 않았다고 하여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회원들 사이에 오해와 다툼이 생긴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법령이든 회칙이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불필요한 잡음의 소지를 예방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뒤 친구로부터 법인명을 다른 이름으로 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 일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냥 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제도적 측면에서 세무사회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공유하며 한바탕 웃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의 '꽃')
소중하지 않은 이름이 어디 있으랴.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