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는데 왜 도시철도 채권을 함께 사야 하나"
지난달 SM5 2000cc 차량을 2300만원에 구매한 A씨(경기도 광명)는 임시번호판을 떼고 차량등록을 하기 위해 시청에 갔다가 자동차 취·등록세 납부와 함께 160만원이 넘는 도시철도공채를 매입해야만 한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놀란 A씨가 차를 구매한 대리점에 문의하니 선택은 자유지만 공채를 매입하지 말고 그냥 할인해서 파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160만원짜리 공채를 보유하고 있어도 이자는 눈꼽만큼(연이율 2~3%) 붙기 때문에 돈을 묶어두느니 차라리 할인해서 팔아버리는 게 자동차 구입비용도 줄이는 등 여러모로 낫다는 것.
결국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30만원이 할인된 가격에 공채를 팔았다.
승용차와 별로 관련도 없어 보이는 도시철도공채를 매입해야한다는 사실도 의아했지만 사실 말이 매입했다가 판 것이지 오간 돈은 없고, 그냥 30만원을 세금과 함께 추가로 국가에 납부한 셈이여서 왠지 이유 없이 돈을 뜯긴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갖고 있자니 별 도움도 안되고 팔자니 생돈이 날아가는 형국이다.
□ 세금과 다름없는 '공채깡' 왜 해야 하나= 도시철도법에는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면허·허가·인가를 받거나 등기·등록을 신청하는 등의 경우에는 도시철도채권을 매입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 등 예외조항도 있지만 자동차를 새로 등록할 때는 도시철도채권(서울, 부산, 대구, 인천지역)이나 지역개발채권(기타지역)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이는 차량을 사용함으로써 발생되는 교통혼잡 해소와 대중교통확충이나 도로공사 등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국가나 지자체가 차량구입자들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실상 제2의 취·등록세에 해당한다.
공채 매입가격은 차량 공급가액(차량구입가격에서 부가세 제외한 금액)에 공채비율을 곱해서 계산하게 되는데 배기량이나 승합차의 인승, 화물차는 톤(t)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르다.
크게는 지하철이나 국철이 다니는 곳과 다니지 않는 곳으로 구분되고, 여기에 800cc∼2000cc이상 등 배기량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3%에서 20%까지 다양한 매입율이 적용된다.
때문에 같은 차를 구매하더라도 서울에서는 200만원이 넘는 공채를 매입해야하고, 경기도에서는 100만원대에서 공채를 매입할 수 있는 차이가 발생한다. 최근 수도권의 수입차주들이 멀리 경남까지 내려가 등록을 하고 오는 것도 지역에 따라 이런 공채매입가격을 절감할 수 있는 효과 때문이다.
□ 자동차 업계 "내수 위축되는 원인"= 공채매입은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에서도 수년간 쌓아온 불만덩어리이다.
차를 살 때마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공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차량구매가격이 높아져서 내수가 위축된다는 것.
P자동차회사 관계자는 "공채매입으로 인해 차량의 판매가격의 상승효과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잠재적인 수요를 억제시켜 자동차의 내수진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수년간 공채매입 폐지를 요구해 왔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러나 공채의 의무매입 제도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소비자다.
공채를 매입해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꼴이지만 팔 때에 남는 이윤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차량등록 즉시 공채를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다.
할인된 만큼 그냥 돈을 뜯기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이에 대해 정부는 채권매입이 국가재원마련을 위해 당연히 취하는 조치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100만원에 공채를 매입하더라도 그대로 팔면 실제부담은 2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며 "주택채권도 마찬가지지만 국채는 모두 법에 따라 재원마련을 위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법개정이 고려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교통혼잡 해소와 대중교통확충 등 국가재원마련을 위한 법취지가 있기 때문에 이유가 충분하고 따라서 개정의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러나 도로교통에 대한 재원마련이 공채 외에 다른 세금으로도 이뤄지고 있는 만큼 공채매입과 할인이라는 불합리한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자동차 소비자들은 주유시에도 교통에너지환경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부담하고 있고, 재산세 등을 통해 지방재정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국공채 매입뿐만 아니라 경유차에 대한 환경개선비용부담금 등은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