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소득세 등 인하 유보 가능성 시사
VAT인상 외부용역, 담배·술 세금 인상 움직임
이명박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감세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사상 초유의 초과세수를 바탕으로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추진했지만, 최근 경기악화와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감세의 추진동력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내년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유보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며 감세 궤도의 수정을 시사했다.
특히 재정부의 외부 용역보고서에는 "부가가치세 과세기반 확대나 기존의 소득세 감세에 대한 대안으로 소비과세 강화와 관련된 세제개편을 적극 검토해야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정부가 증세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가가치세율 인상에 대해서는 전혀 검토하지 있지 않다고 못박았지만, 최근 저소득층 소비량이 많은 담배와 술에 붙는 세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부자 감세'를 '서민 증세'로 메우려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지난해 대대적 감세정책‥'부자 감세' 논란=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출범 직후인 3월부터 유류세를 10% 인하하고, 대표적인 기업 조세감면제도인 임시투자세액공제의 일몰시한을 연장했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취지 아래,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낮추고,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제도 대폭 완화했다.
이를 통한 감세규모는 2012년까지 총 35조원으로, 사상 최대의 감세정책이 탄생했지만, 한편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논란도 거셌다.
소득세 과세대상 중 절반을 차지하는 면세자(저소득층)들은 세금인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고가주택 및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부담 완화정책이 소위 '가진 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감세로 기업이 이익을 많이 창출하면 고용 기회가 늘어 서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진다"며 "감세의 혜택이 부자에게만 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참여정부 당시 "감세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돼 소득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세입기반을 항구적으로 잠식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증세 기조가 정권 교체로 확 바뀐 셈이다.
□ 소득세·법인세 인하 유보‥정부 입장 '급선회'= 지난해 정부는 소득세율을 과세표준 구간별로 2%p씩 인하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부자 감세'에 대한 비판여론에 따라 최고세율 구간(과표 8800만원 초과)에 대해서는 2010년부터 낮추도록 수정됐다.
법인세 최고세율(과표 2억원 초과)은 25%에서 22%로 낮추고, 2010년부터는 25%에서 20%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지난 3월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유보하자는 법안(김효석 의원 대표발의)을 제출했다. 2010년 이후에도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각각 35%, 22%로 유지하자는 내용이다.
그동안 재정부는 민주당의 감세 유보법안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도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는 법 개정에 따라 시행하겠다"며 유보할 생각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조치 유보에 대해 묻자 "상당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재정부는 "감세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며,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국면에서 비과세·감면 축소 등 중장기적인 측면의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데 대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 술·담배 세금 강화 검토‥'서민 증세' 우려= 정부가 감세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증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재정부가 한국재정학회에 발주한 용역보고서에는 "부가가치세 등 소비과세를 강화하는 세제개편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논란이 불거지자, 재정부는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즉각 해명했다.
에어컨 등 일부 전자제품에 대해 개별소비세를 과세키로 하고, 세부 품목을 선정하고 있지만, 이는 증세가 아닌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게 재정부의 설명.
물가 안정을 위해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던 밀가루와 맥주·커피 등 할당관세 품목을 내달부터 대폭 축소, 벌써부터 관련 제품의 가격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할당관세 축소에도 원자재의 수입가격이 하락했다는 명분이 있지만,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세수를 늘리는 측면도 고려했다고 정부는 시인했다.
최근에는 재정부가 담배와 술에 과세되는 세금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는 취지로 검토되는 사안이지만, 저소득층의 소비량이 높은 재화인 만큼 서민들의 세부담이 늘어난다는 역풍이 도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