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회사 많게는 3.8조원 세부담 증가…IFRS 때문에 '울상'
지금까지 '정률법'으로 유형자산 감가상각 회계처리를 해왔던 상장회사들이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할 국제회계기준(IFRS)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IFRS를 적용하면 감가상각 방법을 '정률법'에서 '정액법'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정부의 투자장려정책에 따라 예상대로 투자할 경우 기업별로 추가 부담해야 할 법인세 규모가 많게는 수 조원에 이를 것으로 시뮬레이션 분석결과가 나왔기 때문.
이에 따라 이들 회사들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와 한 목소리로 "세법이 아닌 회계기준이 외부에 의해 바뀐다고 해서 급격하게 세금부담이 증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현재 결산조정항목으로 돼 있는 감가상각비를 신고조정으로 바꿔달라"고 울상을 짓고 있다.
이들은 또 "정률법을 써왔던 회사들이 기존 계획대로 투자를 하면 IFRS 적용에 따라 1개 회사가 많게는 3조원이 넘는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투자를 많이하는 기업일수록 정액법을 썼을 때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IFRS를 적용하면 감가상각 방법을 왜 정률법에서 정액법으로 바꿔야 하고 또 이로 인해 왜 세금부담이 늘어나는지, 업계입장과 세제당국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지를 조세일보가 자세히 취재해봤다.
■ IFRS 적용하면 왜 감가상각방법 바꿔야 하나
건물이나 기계장치 등 유형자산에 투자한 회사들은 매년 유형자산의 사용에 따른 마모 또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가치감소 등을 회계장부에 반영하는 감가상각을 해야하는데, 회사마다 상황에 맞게 정률법이나 정액법 등을 선택해서 감가상각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률법은 초기투자액에서 이미 감가상각을 한 부분을 뺀 장부가액에 매년 일정률을 곱해서 계산하는 방식이어서 투자초기 감가상각비가 많고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비가 줄어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례로 5년의 내용연수를 가진 1조원짜리 기계장치에 투자했을 때 정률법에선 0.451의 정률을 적용, 5년 동안 ▲1년차: 4510억원 ▲2년차: 2476억원 ▲3년차: 1359억원 ▲4년차: 746억원 ▲5년차: 908억원으로 감가상각비를 계산한다.
반면 정액법은 초기투자액을 유형자산의 존속이 예상되는 기간을 나눠 감가상각비를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똑같은 규모의 감가상각비가 계산된다. 이 때문에 내용연수 5년의 1조원짜리 기계의 경우 매년 2000억원씩의 감가상각비를 장부에 반영하는 것.
회사가 감가상각 방법으로 정률법을 선택하든 아니면 정액법을 사용하든 기계의 수명이 끝난 5년 뒤의 전체 감가상각비를 합한 금액은 1조원으로 똑같다. 그러나 투자초기 많은 감가상각을 하면 비용이 느는 반면, 초기 법인세부담이 줄어들어 절세수단이 된다는 설명이다.
현행 기업회계기준이나 IFRS에서 유형자산에 대한 감가상각방법으로 정률법과 정액법을 선택하도록 한 것은 마찬가지. 그렇다면 IFRS 도입기업들은 왜 앞으로는 정률법을 쓰지 못하고 정액법만 써야한다고 울상을 짓는 걸까.
이에 대해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회계기준에선 유형자산을 어떻게 사용하든지 관계가 없이 회사가 임의로 정률법이나 정액법을 써왔다"며 "IFRS에선 정률법을 쓸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정해놔 사실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IFRS에선 감가상각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회사자율에 맡기고 있지만 회사가 어떤 방법을 선택했을 땐 회사가 "왜 그 방법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었는지"에 대한 판단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
특히 IFRS에선 감가상각방법의 선택기준과 관련 "자산에 내재돼 있는 미래경제적효익의 예상소비형태를 반영해서 감가상각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정해놨다.
회사가 정률법을 쓰려면 "회사의 특수한 사정상 기계장치 등을 사들인 초기 기계를 집중적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을 증명해야 하는데, 투자초기 기계장치를 집중적으로 써야 할 상황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는 것.
■ '정률법→정액법' 전환하면 세금부담 왜 커질까…결산조정 때문
조세전문가에 따르면 현행 세법은 회사가 비용항목을 회사 장부에 반드시 비용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비용으로 인정하는 결산조정항목, 그리고 회사가 비용으로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도 세무조정을 통해 비용으로 신고하면 비용으로 인정하는 신고조정항목을 열거하고 있다.
감가상각비의 경우는 반드시 회사장부에 반드시 비용으로 올려놔야만 세법에서 비용으로 인정하는 결산조정항목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번에 문제가 불거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감가상각비를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받아 세금을 줄이려면 회사장부에 세법에서 허용하는 한도만큼 충분히 비용으로 쌓아놔야 하는데, 정액법을 적용하면 감가상각비로 장부에 올려놓는 금액이 정률법보다 애초부터 작아져 세금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와 관련 대한상의는 "정률법에서 정액법으로 상각방법을 불가피하게 변경하는 회사는 변경 전 대비 손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감가상각비가 감소된다"며 "이는 과세소득에 직접 영향을 미쳐 경제적 실질은 변함이 없는데도 세부담만 느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 투자액 같으면 세부담도 같다?…업계, "뭘 모르시는 말씀"
정률법을 써왔던 회사들이 정액법을 쓰게 되더라도 기존에 투자했던 유형자산에 대한 감가상각방법을 처음부터 고치라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5년 등의 내용연수가 끝나면 어떤 방법을 쓰든 감가상각비의 합계가 같은 만큼 세부담이 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5년 동안의 감가상각비는 1조원으로 같은 만큼 초창기 정률법을 썼을 때 법인세부담이 줄어들지만 내용연수 뒤로 갈수록 법인세부담이 커져 결국은 법인세 부담이 같아지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정률법을 써왔던 회사라 하더라도 세금부담은 결국 같고 기껏 부담을 안아봤자 초기 더 부담한 법인세에 대한 금융이자 등 기회비용 밖에 없는 만큼, 그 정도는 기업들이 충분히 부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에 대해 정률법을 써왔던 해당기업들은 펄쩍 뛰고 있다. 이는 분석을 잘못해도 한참 잘못하고 있다는 것.
해당기업 뿐만 아니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이 같은 분석에 대해 "회사들이 단 1회 투자를 하는 경우는 이 같은 분석이 맞지만, 매년 같은 규모로 투자를 반복할 경우만 가정해도 상황이 전혀 달라져 결코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에 따르면 내용연수 5년의 기계장치에 매년 1조원씩 투자할 경우 정액법에 따른 감가상각비는 첫해 2000억원에서 매년 투자가 이뤄질수록 2000억원씩 많아져 내용연수가 끝나는 5년차 이후에는 감가상각비가 1조원이 된다.
정률법을 쓸 경우엔 투자 첫해 감가상각비가 4510억원에서 출발해 2번의 투자가 이뤄지는 2년째는 6986억원, 3번의 투자가 이뤄진 3년째는 8345억원, 4년째 9091억원으로 됐다가 잔존 내용연수 1∼5년짜리 투자자산이 혼재된 5년째 1조원의 감가상각이 된다.
투자가 거듭돼 잔존내용연수가 1년이 남는 시기엔 투자초기 자산과 마지막 감가상각 자산이 혼재돼 정률법과 정액법으로 인한 감가상각이 같아지고, 이후부터는 매년 투자가 이뤄진다면 영구적으로 정률법이나 정액법으로 인한 세금부담의 차이가 없어진다는 것.
결국 1∼4년째까지 정률법으로 더 많이 감가상각을 했던 부분에 대한 세금부담이 매년 투자를 반복하면 영구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로 남는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