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역사는 1992년 IBM의 사이먼(Simo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갖고 다니는 이동전화에 휴대정보단말기를 부착해보자는 것이 제품의 컨셉트였다.
1996년 '노키아9000'이 사실상 첫 제품이었고 제품의 카테고리를 오늘의 스마트폰으로 이름붙인 것은 1997년 에릭슨(Ericsson)사였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 할 때까지 스마트폰은 모바일 폰이라기보다는 멀티미디어 컴퓨터, 내지 휴대정보단말기 성능을 갖춘 전화의 성격이 강했다.
애플의 아이폰은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속의 컴퓨터'로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휴대용 전화의 작은 스크린으로 인터넷 브라우징을 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에 응용프로그램 앱스(apps)로 소프트웨어를 내려 받아 브라우저를 열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부터 정보를 검색하는 방안을 창안해 낸 것이다.
스마트폰이 전체 휴대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18% 정도다. 올 1분기 판매량은 5400만대로 전 분기에 비해 50%가 늘어나는 등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시장점유율은 노키아가 40%로 단연 앞서고 림(RIM)의 블랙베리폰이 19.7%, 애플이 16.4%다. 우리의 삼성은 HTC와 모토로라에도 뒤지는 3%대다.
시장점유율 수치만 놓고 보면 애플의 '아이폰 신드롬'은 생뚱맞게 들린다. 노키아의 심비안은 부동의 선두주자다. 오바마대통령이 애용하고, 북미시장에서 비즈니스폰으로 자리를 굳힌 블랙베리폰은 기술적으로 '스마트폰의 왕'으로 자처한다. 그럼에도 시장점유율이 낮은 후발주자 애플이 스마트폰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아이폰이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기를 넘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앱스가 삼위일체가 된 일종의 '생태체계'(ecosystem)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와 앱스가 중요하고, 이 생태계 속에서 소비자와 함께 상생하는 협력관계 구축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노키아의 심비안은 다양한 기기들과 그에 맞는 플랫폼들이 모여 시장점유율이 클 뿐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고, 블랙베리폰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위주 사업모델이다. 단일기종, 하나의 플랫폼, 막대한 응용프로그램으로 소비자들과 거대한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한 아이폰과 경쟁상대가 될 리 없다.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면서 기존 업체들의 주특기인 하드웨어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이폰은 2007년 발매개시 이후 5000만대 이상이 팔렸다.
애플은 아이폰 3G를 출시한 지 1년만에 아이폰4를 이달 들어 선보였다. "애플로부터 귀하가 구매하는 것은 하드웨어만이 아니고 앱스와 그 상점이 포함된 전체 묶음(the whole package)"임을 내세우며 승승장구다.
공개플랫폼을 갖춘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항마다. 안드로이드폰의 세계 판매량이 2013년경이면 애플을 능가한다는 예상도 나돈다. 그러나 구글은 우선 애플리케이션 등록건수에서 애플의 5분의 1이 안된다.
심비안처럼 다양한 버전에 하드웨어도 가지각색이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이는 작은 서로 다른 플랫폼들이 더 많이 모이고 있다는 점에서 심비안과 다르지 않다. 잦은 업그레이드 버전 출시로 OS 사용이 무료라는 장점보다 버전 업그레이드에 맞춘 세부 프로그램 세팅비용이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게다가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이어 두번째 OS인 크롬(Chrome)을 올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안드로이드 폰이 시장점유율면에서 '폐쇄적인 독불장군' 아이폰을 앞설 수는 있겠지만 아이폰의 위력을 능가할 수 있을 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애플 아이폰4 발표에 맞추어 갤럭시S 출시발표로 맞불작전을 폈다. 뛰어난 하드웨어에 구글의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로 애플과 승부를 건 것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성능에서 갤럭시S는 안드로이드 진영 최고작품임이 분명하지만 스마트폰시장에서 하드웨어성능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뛰어나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휴대폰업계는 그동안 '타도 노키아'만을 생각하며 눈앞의 점유율 확보를 위한 가격경쟁과 보급형 제품강화에만 집중하다 스마트폰의 새 흐름을 놓쳤다. 올 초 만해도 스마트폰 얘기만 나오면 국내에서는 '아직 이르다'는 반응들이었다.
애플은 소비자를 자기편으로 만들면서 이용자 중심제품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 이 때문에 충성도 높은 팬들이 세계적으로 넘쳐나고 소비자들이 애플을 자발적으로 홍보한다. 애플이 아이폰4 발표 후 3박4일 동안 개발자들에게 자상한 교육을 실시한 데 비해 삼성전자는 제품공개 쇼만 하고 끝냈다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스마트폰이 휴대폰시장의 주류로 급속히 떠오르면서 휴대폰시장의 주도권마저 애플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증폭된다. 기기 제조는 아웃소싱이 대세다. 스마트폰의 라이프사이클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인데다 아웃소싱 품질도 상당 수준에 와 있어 하드웨어를 통한 차별화 여지는 갈수록 줄어든다. 제조기반이 없는 애플과 구글 역시 대만에서 위탁 생산한다.
소프트웨어를 통한 차별화의 중요성은 그럴수록 더 커진다. 삼성전자가 독자 운영체체 바다(bada)를 내놓은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무늬만 OS일뿐 시장성이 없다'는 혹평이 따랐지만 이마저도 갖지 못하면 '판매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전쟁의 전선(戰線)은 스마트TV로 확대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스마트TV사업에 뛰어들어 삼성과 LG전자가 1, 2위를 다투고 있는 TV시장을 넘보고 있다.
스마트폰과 PC와 TV가 연동해서 화면을 공유하는 3스크린전략의 실행에는 공통의 플랫폼과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 시장이 앞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며 아이폰4 스크린의 화질을 HD비디오로 끌어올려 비디오 컨퍼런싱(화상회의)을 일상화시키는 구상도 내비쳤다.
아이폰의 핵심부품을 삼성과 LG 등 국내업체들이 공급해 애플과는 한편으로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묘한 관계다. 올 1분기 동안에만 글로벌시장에서 팔린 아이폰이 875만대에 달한다. 애플은 경쟁자이면서 무시할 수 없는 대고객이다.
부품판매수익의 '단맛'에 빠져 소프트웨어 플랫폼 확보를 서두르지 않으면 TV주도권마저 애플이나 구글에 내어줄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 스티브 발머는 MS가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트랜드를 놓쳤다고 지난주 실토했다. IT분야 글로벌 주역들이 흐름을 잘못 짚어 졸지에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나 LCD에 투자하는 만큼 소프트웨어부문과 연구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야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