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통장 계좌인 이른바 '골드뱅킹'에 대해서도 배당소득세 15.4%를 부과해야 한다는 정부의 유권해석이 내려지면서 관련 상품을 비과세로 판매해 왔던 은행권을 중심으로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비과세라고 선전해 판매했던 상품이 하루아침에 과세상품으로 바뀌게 됐고, 더구나 기존 가입자가 얻어낸 과거 이익에까지 세금을 부과(소급과세)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당장 전체 골드뱅킹 상품판매의 90%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신한은행이 15일부터 골드뱅킹 상품의 신규가입을 한시적으로 중지한다고 밝혔고, 국민은행도 이 날부터 골드뱅킹 신규계좌 개설을 금지했으며 기업은행 역시 신규가입 중단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은행들은 소급해서 과세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은행이 책임을 지고 고객들의 세금을 대신 부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골드뱅킹을 취급하는 시중은행은 신한은행(3600억원), 국민은행(280억원), 기업은행(170억원) 등 3개 은행으로 가입자 9만여명, 10만개 계좌에 총 4050여억원 규모에 달한다.
□ "비과세인줄 알았는데"…뭐가 바뀌었나= 이번 혼란의 원인은 그동안 과세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과세방침을 결정하면서부터 비롯됐다.
국세청은 지난 9월2일 골드뱅킹의 이익이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른 배당소득인지 여부에 대해 기획재정부에 질의했고,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국세예규심사위원회를 열어 과세대상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번 유권해석의 근거가 되는 소득세법 시행령 제26조의 3은 과세가 되는 '배당소득의 범위'를 정하는 조항으로 지난 2006년 2월9일 증권거래법 시행령상 증권 또는 증서로부터 발생한 수익의 분배금도 배당소득에 포함된다는 내용으로 마련됐다.
여기에 2009년 2월4일 자본시장통합법의 신설과 함께 그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 이번에 논란이 된 배당소득의 범위는 이 때 결정됐다.
당시 시행령 개정에서는 증권의 성질을 갖춘 것으로서 농·수·축·임·광산물, 에너지에 속하는 물품 등에 대한 가격·이자율 또는 이를 기초로 하는 지수의 수치와 지표와 연계해 이익을 얻거나 손실을 회피하는 증권·증서도 배당소득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골드뱅킹은 '광산물(금)'의 지수연계 상품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2009년이 아닌 2010년 11월에서야 과세를 하겠다고 나선 것일까하는 부분도 의문으로 남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세당국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재정부의 유권해석대로라면 과세근거는 이미 2009년 2월에 마련됐지만 1년 9개월여만인 지금에서야 과세를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미처 이 부분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국세청 유권해석 요청을 받고 뒤늦게 정리를 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이 최근 골드뱅킹 상품을 새롭게 판매하겠다며 금융당국에 허가를 신청하면서 수면 위로 불거졌다는 후문이다.
□ 소급과세 문제없나…제2의 '엔스왑' 사태(?)= 기획재정부는 이번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과세시기'에 대해서도 해당 소득세법 시행령이 개정된 시점에 맞춰 2009년 1월1일 이후 발생한 소득부터 과세대상이라고 판단했다.
2009년 2월4일에 개정된 해당 법 시행령 조항의 법적 효력이 2009년 1월1일부터인 만큼, 이 시점을 기준으로 2009년 2월4일 이후 금 통장을 해지해 발생한 배당소득은 과세대상이 된다는 것.
당장 해당상품을 비과세로 팔아온 은행들은 이 소급과세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생기고 법이 개정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소급적용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며 "2월 이후에 통장을 해지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세금을 받아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재정부는 소급과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 재정부 관계자는 "법개정에 따라 당연히 받았어야 할 세금을 받지 않은 것을 바로잡은 것"이라며 "새로 규정을 만들어 과세하는 것이 아니므로 소급 과세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런 상황은 과거 2007년에 논란이 됐던 엔화스왑예금 과세문제와 유사한 모습이다.
당시 국민·기업·신한·씨티·우리·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국세청의 인터넷 상담내용을 토대로 엔화스왑예금을 비과세상품으로 판매했지만 재정부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세무조사까지 단행한 국세청으로부터 수 백억원의 세금을 추징 당해 법정소송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은행들의 움직임은 다소 조심스럽다.
아직 현실적으로 과세가 실현된 것이 아니어서 불복이나 소송절차를 진행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개정법안을 확인하지 않은 채 비과세상품으로 홍보해 금값 고공행진과 더불어 짭짤한 수익을 올려온 은행들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소득세 원천징수 의무자인 은행들이 법을 확인하지 않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고 소득세와는 별도로 가산세까지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골드뱅킹 상품 판매액이 가장 큰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단은 고객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예상보다 피해가 커질 경우에는 당국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 놨다.
이 관계자는 또 "자본시장통합법 관련 규정의 유권해석이 문제라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 당장 쟁송단계로의 진행은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은행들이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과세금액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들의 금융상품을 인허가 해주는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의 개별상품 세금문제까지 개입할수는 없지만 1차적인 책임은 은행 쪽에 있는 것 같다"며 "과거 엔화스왑 문제처럼 금액도 크지 않아서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