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기억하는 전화번호…고객과 함께 '울고 웃다'
승부사 본능으로 만든 '팀플레이'…오늘의 김앤장 만들다
법률시장 개방…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성공한 전문가는 고객들이 머리가 아닌 검지손가락 끝에 전화번호를 입력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슈가 생긴 고객이 검지손가락을 머리보다 빨리 움직여 자동적으로 자신의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도록 평소 고객을 감동시켜야 하죠. 바로 김앤장이 추구하는 전문가 정신입니다."
법률자문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선명한 첫 족적을 남긴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역사는 한국경제의 발전과정과 떼 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차관도입이나 은행설립, 합작투자, M&A, 외자유치 등 경제발전 단계를 한 단계 높이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만한 주요 사건 뒤에는 언제나 김앤장의 숨은 노력이 스며있기 때문.
'자문역할'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낼 수 없는 김앤장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고객들이 '최고'라는 찬사를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손가락이 기억하는 전화번호…고객과 함께 '울고 웃다'
김앤장이 탄생하던 1973년은 '외국 차관'의 힘을 빌려 한국경제가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하며 발전의 씨앗을 뿌리던 시기. 김앤장은 당시 외환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설립에 깊숙이 관여하고, 대우자동차와 GM의 합작투자건을 성사시키는 등 시작부터 화려했다.
이후 김앤장은 미국의 최대통신회사인 AT&T사와 LG사와의 광통신제조사업에 대한 합작투자에 법률자문을 제공하며 한국에 정보통신사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줬고, 중동건설붐이 한창 일 땐 현지 공사관련 입찰이나 이행보증에 대한 법률자문으로 일조했다.
초짜 수출국가에 속했던 우리 기업들이 현지 법률을 몰라 억류되거나 할 때 가장 먼저 현지로 달려간 것도 김앤장이었고, 신차개발에 목말라있던 대우를 도와 GM과의 합작을 성사시켜 '르망' 탄생을 도와준 곳도 김앤장이었다.
외자조달이 절실했던 때에는 외국의 선진금융기업을 국내에 소개해고 법적구조에 대한 자문 등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김앤장은 국내최초 외국인대상 수익증권발행, 국내최초 해외전환사채 발행, 최초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국내최초 주식예탁증서 발행 등 유난히 국내 최초의 딜에 많이 관여하면서 한국 금융분야 역사에서 획기적인 건들을 거의 도맡아 처리했다.
외환위기 당시 국가 위기극복을 위해 가장 피를 말리며 분주했던 곳도 김앤장. 국가부도를 막기 위한 대책을 정부가 마련할 때 기업들의 채무연장이나 자본조달 등 숨가쁘게 진행된 많은 사건 뒤에는 김앤장의 피와 땀이 서린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
특히 지난 2007년 있었던 두산그룹이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인 미국의 Ingersoll Rand사를 49억불에 인수한 딜을 성사시킨 것은 한국을 떠나 세계 로펌 M&A 역사의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 김앤장이 고안한 전세계 27개국에 산재된 72개 법인을 동시에 인수하고 일시에 인수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세계 M&A 사례에서 찾기 힘들뿐더러, 한국 로펌의 위상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결과가 됐다.
김앤장은 때로는 정부의 편에서 또 때로는 국내외 기업 편에서 늘 곁에서 함께 울고 웃어 왔다. 특히 때로는 국민정서와는 정반대의 편에 서서 외국자본의 입장을 대변, "이 땅은 법과 시스템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국내외에 각인시켜 국가신인도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아직도 수많은 고객들이 머리로 김앤장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번호를 누를 손가락으로 먼저 기억하는 현상이 이해되는 이유다.
■ 벤처정신으로 똘똘…'로펌 전문화 시대' 열다
김앤장이 걸어온 역사는 '벤처정신'으로 요약된다.
당시 법률시장의 주류를 이뤘던 송무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기업자문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사무소를 낸 것이나, 사법연수원을 마친 고급 인재들을 로펌으로 끌어 모아 해외 연수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키운 것 등은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이었다.
김영무 변호사가 법률사무소를 내기 직전 미국 유학과정에서 '법률자문'에 중심을 둔 선진 로펌의 장래성을 경험한 이유도 있지만, 그때까지 산업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한국시장을 감안할 때 자문위주의 로펌 운영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벤처정신'이였다는 평가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일이 터지기 전 미리 대비하자"는 법률시장의 신개념을 만든 것이나, 국내 최초로 조직을 회사분야와 금융분야로 나누는 등 '로펌의 전문화'를 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앤장의 설립취지는 시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산업화가 본류를 타면서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차관도입, 합작투자, 초기단계의 기업인수합병 등 '법률자문' 수요가 봇물 터지듯 넘쳐났던 것.
이 때부터 기업자문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는 한국 경제사의 면면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김앤장 사람들은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기업에 조세자문을 해 줄 때 든든한 지렛대 역할을 함은 물론, 법리 전개에 있어서도 깊이가 달라지게 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고 했다.
또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에 더한 벤처정신은 현재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고객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헤아리고, 개방체제에서 한국의 1등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시대를 대비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
최명해 고문은 "김앤장은 설립초기부터 전문화를 통한 대형화를 꾸준히 추진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이것은 로펌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간파한 전략인 것"이라고 자랑했다.
■ 승부사 본능으로 만든 '팀플레이'…오늘의 김앤장 만들다
김앤장 사람들은 "오늘날 김앤장이 조세분야를 포함한 법률자문 전 분야에 걸쳐 한국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터전은 바로 '팀플레이'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40년 가까이 기업자문 영역을 개척하며 기업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게 됐고, 여기에 어떤 쟁점이 있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승부사 본능'을 갖춘 최고 전문가들이 수시로 '팀'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김앤장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것.
실제로 김앤장은 고객이 어떤 사건을 들고 오면 이를 수많은 쟁점으로 세분화한다. 한 덩어리로 묶어서 대처하다보면 전체적인 패소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 세분화된 쟁점별로 그 시점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가 해결하는 구조가 '팀플레이' 방식이다.
김앤장 조세그룹에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외국세법전문가, 경제학자, 금융감독기관 근무 경험자 등 다양한 분야 출신들이 130여명이나 포진돼 있다.
또 이들은 ▲조세불복 및 소송 ▲세무조사 ▲이전가격 ▲금융조세 ▲기업인수합병 ▲경영권승계(주식이동, 상속·증여 포함) ▲관세 등 7개 팀으로 분류돼 있는데 사실상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할 때가 많다는 것이 김앤장 측의 설명.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M&A를 추진한다고 했을 때 이에 수반되는 주주변동, 경영권 변화에 따른 조세문제 발생, 노사문제 등이 함께 수반된다는 것.
이에 따라 하나의 사건을 자문해 주기 위해서는 최적의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하는데 규격화된 조직은 업무의 효율성을 방해할 때가 많다는 것이 김앤장 측의 판단이다.
김앤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 플레이 문화를 정착시켜 각 사안에 맞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팀을 구성해 다이나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세그룹이 아닌 다른 분야 소속 최고 전문가도 수시로 팀에 합류한다.
당대 최고를 자랑하는 각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법리적인 검토는 물론 세무, 회계, 노무, 정부정책 방향, 국가별 대응 등의 사안을 집중적으로 고민한다. 이 때문에 최적화된 해답을 도출해 내기가 그만큼 수월하다는 얘기다.
전형수 고문은 "팀플레이 방식은 얼마만큼 팀을 잘 짜서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김앤장은 사건에 따라 그때그때 전문인력을 뽑아 팀을 구성하는게 강점이며, 팀 구성의 유연성과 전문성의 깊이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 법률시장 개방…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FTA 등에서 비롯되는 법률시장 개방의 바람은 국내 로펌에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개방화를 겪은 독일이 10대 로펌 가운데 2개만 존속하게 된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중인 영국 3대 로펌(링클레이터스, 프레쉬필즈, 클리포드챈스)의 지난해 매출실적은 각각 23억불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조원대. 우리나라 전체 법률시장의 규모가 2조원대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위용은 큰 창과 방패로 무장한 거인 골리앗으로 볼 수 있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영업환경 등을 감안할 때 외국 로펌이 사람을 직접 끌고 들어오지는 못할 터. 분명 거대 자본을 앞세워 현지 사정에 밝고 어느 정도 영업능력을 인정받으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에 대한 포섭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당대 최고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김앤장이 외국 로펌의 '인력 수혈'의 제1 타겟이 될 것은 자명하고, 거대자본을 배경으로 한 '좋은 조건'에 몇몇 이탈세력이 없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토종로펌 김앤장은 영미계 로펌의 그런 파상공세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에 부심하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 부분에선 한국의 대표 토종로펌은 건재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깊이 묻어나는 대목. 김앤장은 중무장한 거인 골리앗에 돌멩이 몇 개와 가죽끈 하나로 덤빈 16세 양치기소년 다윗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다.
물론 김앤장의 국내 기업자문 시장에 특화된 전문성과 최고의 전문 인력들은 단순히 밑돌 몇 개를 빼 간다고 해서 단시간에 무너질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김앤장 측의 생각.
이 주장에는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기업자문 분야의 지평을 열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설사 인재 몇 명을 빼 가더라도 충분히 그 인재를 대체할 비밀병기들이 김앤장 안에서 키워지고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 있다.
그럼에도 영미계 로펌의 국내시장 진입은 김앤장에게는 분명 힘겨운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미계 로펌의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김앤장을 꺾지 않고서는 우리 법률시장을 장악할 수 없기 때문.
김앤장 관계자는 "한 나라의 법률에는 그 나라의 전통과 관습이 배어 있게 마련이다"며 "일본과 독일의 예에서 익히 보아왔듯이 영미계 로펌들은 우리의 전통과 관습이 체화된 우리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를 개정하려 들 수도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김앤장의 주장은 일본과 독일의 대륙법에 영미의 'Common Law'가 접목되어 뒤죽박죽 되었듯이 대륙법 국가인 우리나라의 법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
우리 법률문화, 나아가 우리 전통과 관습 수호에 있어 최후의 보루를 자임하고 있는 김앤장.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을 질시하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줄 것인가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