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근 산삼 1뿌리가 들어왔는데 마땅한 판매처가 없다는 것. A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번뜩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A씨는 아내에게 산삼을 먹이기 위해 당시 수중에 있던 70만원에 지인으로부터 돈까지 빌려 비싼 값을 주고 산삼을 구입했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려던 A씨는 산삼이 워낙 고가이고 허가받지 않은 약재나 농산물을 쉽게 국내로 갖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산삼을 잘게 잘라 따로 구입했던 꿀통에 넣어 몰래 들여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밀수'를 감행한 것이죠.
애뜻한 아내사랑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세관직원의 눈에 띄지 않고 산삼을 집까지 무사히 갖고 온 A씨는 며칠동안 아내에게 산삼을 달여 먹였습니다.
물론 산삼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귀한 약재인데 어찌된 일인지 산삼을 다려 먹였는데도 통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돈까지 빌려서, 난생 처음 범죄행위(밀수)까지 감행하면서 고이 가져온 산삼은 '가짜'였습니다.
1년 후, 관세청은 수입업을 하고 있는 A씨가 지난해 아무런 수입신고 없이 중국으로 돈만 송금한 사실을 포착, A씨가 산삼을 밀수한 사실을 확인하고 산삼 구입대금을 기준으로 상당 액수의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에 A씨는 산삼이 가짜인 점을 참작해 세금을 깎아줄 것을 관세청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 "나도 사기 당한 '피해자', 세금 깎아달라" = A씨는 관세청의 세금부과 처분에 대해 "아내의 항암치료를 목적으로 산삼을 구입했지만, 복용 결과 아무런 효과가 없는 가짜였다"며 "밀수를 하긴 했지만 나도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가짜 산삼에 대해 그 실제 가치를 따지지 않고 구입가격만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산삼이 가짜라는 점을 참작해 세금을 깎아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관세청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현행 관세법에서는 수입물품 과세가격을 구매자가 실제로 지급한 가격으로 정하고 있다"며 "A씨가 구입한 산삼에 대해 그 품질과 관계없이 구입대금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한 처분은 정당하다"고 맞섰습니다.
□ 심판원, "불량품도 지급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해야" = 아내를 위해 많은 돈을 내고 구입한 산삼이 가짜인데다 거액의 관세까지 물게된 A씨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심판원은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례에 대한 법원 판례를 참조해 결국 관세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난 1992년 대법원은 불량품 수입과 관련해 "수입물품 중 일부가 불량품이라고 하더라도 대금을 정상품 가격대로 모두 지급한 이상 과세가격은 지급금액이 되는 것"이라며 "불량품 금액만큼 감액한 금액을 과세가격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수입물품이 불량품이더라도 정상품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했다면 과세가격은 불량률에 따라 감액한 금액이 아니다"라며 "관세청이 A씨의 산삼 구입대금을 과세가격으로 하여 관세를 부과한 처분은 잘못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심판원은 "A씨는 해당 산삼을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구입했으며, 현재 산삼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도 없는 상태"라며 "A씨의 청구주장에는 이유가 없으므로 심판청구를 기각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참고 심판결정례: 2010관0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