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화를 만든 그레이엄 벨(Bell)은 역사상 첫 통화를 앞두고 '어떤 얘기를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머릿 속에 떠오른 대사들을 모아 정리해보기도 했다. 이랬던 그가 전화기를 통해서 했던 첫 마디는 이랬다.
"미스터 왓슨, 컴 히어!"
고민의 결과치고는 다소 싱겁다.
하지만 이 문명의 이기를 다룰 줄 아는 후대의 사람들은 정말 다채로운 말들을 전화기에 대고 쏟아낸다.
한때 '용건만 간단히'가 미덕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누구나 한 대씩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요즘엔 시시콜콜한 일상의 얘기들을 소재 삼아서 통화를 한들 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화가 스마트해진 현대 사회에선 음성 뿐 아니라 문자 메시지를 통해 먼 곳에 있는 이들과 대화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화기를 매개로 만들어진 첨단기술을 이용, 단숨에 무수히 많은 이들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놀라운 일까지 성사시킨다.
이와 관련해 한 작가는 어느 여름 맥주를 찍어 "너무 더워서 글 그만 쓰고 맥주나 마실랍니다" 라는 글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는데, "함께 마시고 싶다"고 팔로워들이 말을 해 약 100여명 정도와 트위터상 건배를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날로 새로운 기술과 융합되면서 "도대체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의문을 심심찮게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서든 전화란 수단의 본질은 유지되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로서의 본질 말이다.
정가에서 이런 전화를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당선자 시절부터 하루에 50통 넘는 전화를 하며 현안을 직접 챙긴다. 그가 하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어이, 전화연결 좀 해봐"라는 뒷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전화정치에 능하다는 오바마 미 대통령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려 전화로 외부와 소통하는 모습이 닮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소통의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통화 대상은 지도층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정가에서도 그는 여야 의원들을 가리지 않고 전화통화를 한다.
그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등을 추진하는 과정서 다른 정파의 인사들을 내 편으로 포섭, 결국 큰 잡음 없이 목적했던 바를 비교적 쉽게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경우 여기서 좀 차이가 난다. 스스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여러 얘기를 듣고 있다고 자부하나, 소통의 폭에서는 아직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 부분에서 그렇다.
아주 가끔씩 야당 인사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정치적 경쟁자들과 소통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전화통화를 할 때에도 내 가족과 대화한다는 '살가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국정감사 때 고생이 많았다며 여당 의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국회에서 동료 의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에게 전한 격려, 폭설 피해를 염려해 고향인 포항 시장에게 걸었던 전화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이런 이 대통령이 최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에게 전화를 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이 대통령은 이날 통화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김 의원이 최 내정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문제삼으며 지금까지 유지해온 방침, 즉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 불가' 입장을 그대로 고수한 까닭이다. 결국 이 대통령은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최 내정자에게 지경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했다.
야당과의 협조 노력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난 셈이다.
그렇지만 결과를 두고 비관적인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 김 위원장이 "진정성을 느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데다가, 야당인사 다수도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는 아닌 것 같았다"며 비교적 우호적인 평가를 내놓은 까닭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야당을 대상으로 했던 전화정치는 신선함을 줬다. 또한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대결정치 해소의 가능성도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나서 더 세련되고 멋진 전화정치를 정착시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치적 반대자를 일방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전화정치가 아니라, 함께 국정을 논의하고 나라의 장래를 고민하는 수단으로서의 '전화정치'가 절실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