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금융사 인수 잇따라 좌초
'알맹이' 빠진 자본시장 선진화
국내 대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정부의 성급한 민영화 추진에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해말 인도네시아 7위 은행인 파닌은행의 지분 51%를 보유한 파닌파이낸셜과 합작지주사 설립에 합의했으나 최종협상에서 결렬됐다.
인수조건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정부 소유의 국책은행이라는 한계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앞서 산업은행은 지난해 태국 시암시티은행 인수를 추진했지만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인수추진을 중단한 바 있다.
산은이 해외 금융사 인수를 추진했다 철회한 사례는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포함 총 세차례나 된다.
산은이 이처럼 해외 금융사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데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생존을 위해서는 수신기반 확충이 불가피한데 국내 시장에서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 2008년 산업은행 최초로 민간출신 은행장으로 취임한 민유성 행장도 임기중 최대 현안으로 '수신기반 확대'를 꼽아왔다.
그러나 취임직후 추진했던 리먼브러더스 인수작업은 당시 정치권의 반발에 결국 무산됐으며, 수신조달을 위해 자체 고안한 '예금모집인제도'는 금융당국에 발목을 잡혔다.
또,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 인수추진 역시 '정부가 사모펀드의 먹튀를 돕는다'는 부정적 여론에 떠밀려 하나금융지주에 자리를 내줬다.
이처럼 산업은행의 자체 민영화 작업이 줄곧 난항을 겪으면서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산은의 '독자생존'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산업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해소 과정에서 부실기업을 추가로 인수하는 등 민영화와 역행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최근 산은금융지주 자회사인 대우증권과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투자증권 합병 가능성이 거론되는 한편, 금융당국이 산업·수출입은행의 기능재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알맹이 빠진'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 및 정치권에서는 현 정부 초기 마련된 민영화 로드맵이 사실상 무산된 만큼, 구체적인 매각일정 및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배영식 의원은 "산업은행의 경우 여러 대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만큼 헐값매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다만 민영화 일정이 지나치게 늦어질 경우 경영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매각일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