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해진 것 없다"····인하땐 관세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중동사태에 따른 유가 수준별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지시함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유류 관련 세금의 인하 여부를 놓고 내부 저울질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100달러선을 넘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기름값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정부 고민 깊어져..'물가' vs '에너지절약.재정건전성' 논리 충돌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유류세 인하 문제와 관련해 "그것도 (물가대책에) 포함돼 있다"고 말한데 이어 이날 중동사태 상황점검.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유가 수준에 따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정부는 그러나 아직까진 내부적으로 상황을 들여다보는 단계인 만큼 관세나 유류세 인하 여부나 시기, 폭 등에서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컨틴전시 플랜 차원에서 생각해볼 것"이라며 "당장 조치가 취해지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부 세제실측은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고민은 우선 인하 여부나 시기에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촉발된 국제유가의 급등 상황이 다른 중동 국가로 확산되면서 장기화되고 상승폭도 커질 것인지, 아니면 상황이 추가로 악화하지 않으면서 진정될지를 아직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금을 깎아줘도 그에 따른 소비자가격 인하폭이 크지 않을 것인데다,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정책효과가 소멸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는 것도 부담이다. 2008년 3월 유류세 인하 때도 국제유가가 솟구치면서 유류세 감면효과는 금방 사라졌다. 티는 못 내고 엄청난 세수만 축내는 최악의 결과인 셈이다.
아울러 정책논리도 충돌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과 저탄소 녹색성장을 부르짖으면서 세금을 깎아 소비자 부담을 더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는 논리와, 당장 서민들의 물가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세금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정책논리도 맞물려 있다.
지금까지는 물가 논리가 앞서는 게 일반적이지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휘발유값이 2008년 여름의 고점에 다가서고 있는 점은 민생을 최우선시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또다시 세금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이런 고민에 대해 "정책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책 결정권자가 민생 또는 물가, 아니면 에너지절약이나 재정 건전성 등 어디에 우선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내린다면 먼저 관세가 대상될 듯..유류세 인하엔 더 신중
인하를 결정하더라도 그 폭을 예단하기는 힘들다. 유가 상황에 따라 인하 대상 세목이 바뀔 수도 있고 세율도 유동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사례에 비춰 유류세보다는 관세 인하가 쉬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관세는 종가세여서 원유 도입단가가 오를수록 세수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깎아줘도 세수 측면에서 유류세보다 부담이 덜하다.
이 때문에 하나의 카드만 쓴다면 관세 인하에 그치고, 두 개의 카드를 꺼내든다면 관세에 유류세 인하가 더해지는 정책조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현재 관세구조를 보면 일반 원유는 기본관세율인 3%를 매기지만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LPG) 제조용 원유는 각각 0%, 2%의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휘발유.경유.등유.중유(기본관세율 5%→할당관세율 3%)와 액화석유가스(LPG)(3→2%) 등 수입 석유제품에도 이미 할당관세를 적용해 깎아주고 있다.
이에 따라 관세를 내리면 그 대상은 원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유는 2004년 4월에 1%로 내린 이후 줄곧 1%의 할당관세율이 적용돼 오다가 2009년 3월 3%로 환원했다. 이런 점에 비춰 바로 1%로 낮출 수 있지만 유가 상황에 따라 2%→1%로 단계적 인하도 가능해 보인다.
반면 교통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로 구성된 유류세에 대해서는 부가세 외에는 모두 종량세인 만큼 정부가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세수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2008년 3∼12월에 10%를 내린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