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냐, 부족 간 전쟁이냐, 화학무기 공격이냐, 국제사회 개입이냐.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의 잔혹한 무력 진압과 반정부 시위대의 무장 저항이 정면 충돌하면서 리비아 사태가 '가시거리 제로(0)'의 대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따라 리비아에서 향후 벌어질 수 있는 네 가지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중동 정치 전문가인 오마르 아슈르 영국 엑서터대학 교수가 25일(현지시각) BBC 방송 기고문을 통해 전망했다.
◇군부 쿠데타 = 우선 주목받는 시나리오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에 맞선 리비아 군의 쿠데타 가능성이나, 문제는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리비아 군이 이번 사태 이후 단일한 단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군의 중간 간부급 이하에서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몰타 망명 등 반대 세력에 합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나, 카다피 정권의 직속 병력인 약 2만여명 규모의 혁명위원회에서는 분열 소식이 아직 없다.
또 5남 카미스가 이끄는 카다피의 '친위부대'인 민병대 제32여단, 속칭 '카미스 여단'에서도 동요 조짐은 아직 없다.
다만 군부와 보안 기관들 간 뿌리 깊은 갈등은 카다피의 권좌를 흔들 주요 불안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리비아 군 내부의 부족 중심주의 등을 감안하면 군이 하나의 단위로 쿠데타 등의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부족 간 전쟁 = 역사적으로 리비아 각 부족 간의 갈등과 복수 관계, 부족 내 무기 보유 상황 등을 고려하면 향후 카다피가 무너질 경우 부족 간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러나 벵가지 등 반정부 세력이 장악한 동부에서 나타나는 몇몇 징후를 보면 다른 가능성이 발견된다.
동부에서도 부족 간 갈등은 심하지만 벵가지 등지에서 자치위원회가 신속히 구성돼 치안, 의료 등 관리에 나서는 등 지금까지 나타난 이곳 주민들의 조직화와 협동 수준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아슈르 교수는 평가했다.
또 최근 카다피 정권이 측근 인사들을 이집트에 보내 리비아와 연관 있는 부족들을 접촉, 후한 대가를 내걸고 반정부 세력 하의 동부 지역을 공격하게끔 시도했으나 이들이 거부한 사실도 긍정적인 조짐이다.
리비아의 시민사회는 이집트나 튀니지만큼 발전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카다피 이후 리비아에서 부족 간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끝없는 분쟁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이라크가 아랍권에 던져준 교훈, 이번에 이집트·튀니지 청년층이 보여준 헌신성과 성숙함은 민주화를 꾀하는 다른 중동 국가들에 영감을 주는 하나의 모델로서 작용할 수 있다.
◇화학전 = 그간 카다피 측이 군 병력으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극한 수단을 동원한 결과, 이집트·튀니지와 같은 해외 망명이나 국내 칩거와 같은 선택은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카다피 측이 패배하기까지는 수많은 인명피해가 뒤따를 것으로 보이며 극단적인 경우 카다피 정권이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하는 '막가파식'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
리비아가 지난 2003년 화학무기 포기를 선언한 뒤 기존에 보유했던 화학무기의 절반 가량을 폐기했지만 아직 9.5t 분량의 겨자가스 등 상당한 화학무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권에서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지난 1988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화학가스로 공격해 5천여 명을 숨지게 한 사례, 하페즈 알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1982년 무슬림 형제단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무차별 폭격을 감행해 수만 명이 희생된 '하마 학살 사건' 등 비슷한 전례들이 있다.
다만 이집트인 150만명 이상을 비롯해 영국 등 여러 나라 국민들이 여전히 리비아 내에서 위험에 처해 있음을 감안하면, 카다피 정권이 화학무기를 동원할 경우 국제사회의 개입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 개입 = 리비아 사태가 카다피 정권의 대량 살상으로 번지면서 유엔,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와 미국 등 주요국의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대해 중요한 법적 의무를 갖고 있으며 리비아 군과 공안기관 등의 책임자들은 살상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아슈르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카다피의 동서인 압둘라 세누시 등 카다피 수하 인사들도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감시 명단에 오르고 국제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살상 명령을 내리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라고 아슈르 교수는 기대했다.
카다피 정권은 지난 1996년 형무소에서 시위를 벌인 정치범 1천200여명을 사살한 '아부 살림 학살' 등 잔학 범죄를 벌인 과거가 있으나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 때문에 국제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서방은 리비아 국민들을 학살로부터 막을 책무가 있으며 미국과 영국 정부가 아직까지 말은 똑바로 하고 있지만 이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때라고 아슈르 교수는 개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