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에 처음 사용된 외국어…서비스업 정상가격도출 새지평
이전가격도 감액경정가능 첫 해석 도출…해외 눈길 잡다
해외 여러 나라에 현지법인 또는 관계회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에게 최근 조세와 관련해 가장 민감하면서도 핵심적인 현안은 바로 이전가격과 관련한 국제조세문제다.
어느 글로벌기업이 세율이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소득을 옮겨 전체의 세금부담을 줄이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이전가격과세제도는 국경을 넘은 특수관계자간 거래가격과 제3자와의 정상적인 거래가격을 비교, 소득이 줄어든 국가에서 그 차액에 대해 과세를 하자는 것.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적자에 직면한 나라들은 자국민들과의 마찰을 줄이면서 과세가 쉬운 외국기업들을 대상으로 더 공격적인 과세권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기업에 대한 이전가격 과세위협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실무에 있어서는 국제조세와 관련한 법규정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제3자와의 정상가격을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글로벌기업과 각 국의 과세당국 사이에 첨예한 조세마찰이 자주 빚어지고 있다.
해당 다국적기업의 내부가격정책은 물론 그 기업이 속한 산업분야에 관한 광범위한 통계 그리고 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 없이 문제해결에 나섰다가는 자칫 엄청난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전가격조정은 단순한 법률적 분석작업이 아니라 국가간 이해관계는 물론 거래의 복잡성, 문제가 된 제품의 특성과 심지어 언어와 생활관습의 차이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어서 전문가들조차 이전가격조정은 'Science'가 아니라 'Art'로 여길 정도.
이전가격조정은 하나의 정답으로 꼭 집어 나오지 않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객관적인 자료를 먼저 확보해 제공하거나, 해당 거래와 관련된 나라들의 과세관행을 짚어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이런 측면에서 안진회계법인은 전 세계 약140국 200여 딜로이트 멤버펌들과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이며 해외사례를 마음껏 활용, '개방과 자율'이라는 문화적 토양 위에 키워진 '창의력'까지 가미시켜 국제조세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찍어놓고 있었다.
■ 세법에 처음 사용된 외국어…서비스업 정상가격도출 새지평
일본에 있는 모(母)기업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해서 재판매하고 있는 어느 일본계 한국자회사는 지난 2000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제품 구매단가가 문제가 됐다.
국세청은 "일본 회사에서 제품을 너무 비싸게 사들여 한국자회사의 이익이 줄어든 것 아니냐. 과세소득을 인위적으로 줄인 혐의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 이전가격조정에 의한 구체적인 과세움직임을 보였던 것.
당시 사건의 쟁점은 과세의 기준이 되는 '정상가격'을 어떻게 산출하는가였다. 정상가격을 제대로 산출해야 이 회사에서 해외 특수관계자와 거래한 가격이 정상가격에 비춰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세금의 크기도 결정되기 때문.
안진에 따르면 당시 세법에는 정상가격을 산출하는 방법으로 ▲비교가능 제3자 가격방법 ▲재판매가격방법 ▲원가가산방법 등 3가지를 규정하고 있었지만, 구하기 쉽고 간단하다는 이유로 비슷한 여러 업체와 가격을 비교하는 '비교가능 제3자 가격방법'이 선호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방법이 적용되려면 사업활동의 기능, 재화나 용역의 종류 및 특성, 시장여건의 변화, 경제여건 등 거래의 상황이 아주 유사해 비교가능성이 높아야만 하고 이들 조건에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 차이로 인한 가격차이 효과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과세관청은 당시 조사에서 국내의 중개업체를 비교가능기업으로 선정했는데 안진에서는 국내의 거래 관행이 퇴직임원이나 특수관계자를 우대하기 위해 이들이 특정 거래를 특정 회사에 중개할 때는 상대적으로 높은 중개수수료를 받는 서비스업의 특성을 주목, 이를 그대로 비교대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이에 더해 안진은 한국에서 이전가격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훨씬 전에 미국에서 유사한 국외특수관계자간 거래에 실제로 적용하고 있던 'Berry Ratio(매출총이익의 영업비용에 대한 비율)'가 이러한 거래형태의 경우 가장 합리적인 이익수준지표라고 봤다.
서비스업의 특성은 매출총이익이 영업비용과 함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회사에 대해선 이같은 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Berry Ratio'가 정상가격 산출에 가장 적합하다며 과세당국 설득에 나선 것.
당시 국내에는 'Berry Ratio'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상황에서 과세당국에 역으로 정상가격 산출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이 안진 측의 설명.
안진은 "세계적으로도 Berry Ratio가 서비스업의 대표적인 정상가격 산출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다"며 "이 방법은 OECD기준에도 있고, 실무적인 적용 가능성까지 고려해 만든 룰이니 무시하지 말고 숙고해달라"고 끈질기게 강조, 설득했다.
결국 이 방법은 국세청이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용역을 수행하거나 단순유통업 등에 종사하는 기업에 적합한 방법으로 세법 내용으로까지 규정된 상황.
이는 특히 국내 세법에 'Berry Ratio'라는 외국어가 사용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 안진의 저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이전가격도 감액경정가능 첫 해석 도출…해외 눈길 잡다
이전가격에서 증액 뿐 아니라 감액 경정이 가능하다는 최초의 해석도 안진의 노력으로 도출됐다.
지난 2008년 국세청은 A사가 2003년 일시에 인식한 이전가격 감액 조정액을 업무무관비용으로 손금 부인하고 관련 세액을 추징키로 결정한다.
A사가 국외특수관계자와 거래를 하면서 전반기 2개년은 수입금액을 정상가격보다 덜 받고 후반기 2개년은 그 반대로 더 받았는데 과세당국이 정상가격보다 덜 받은 전반기 2개년에 대해서만 정상가격으로 조정해 과세를 추진한 것.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상가격보다 더 받은 후반기 2개년에 대해 감액조정을 해주지 않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당시 국내의 많은 국제조세 전문가들조차 과세당국의 입장에서 증액조정은 당연하지만 감액조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접한 안진은 조사대상기간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하면 A사가 해외로 소득을 이전한 것이 아니라 해외로부터 소득을 이전 받은 것과 같은 결과에도 불구, 감액조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급기야 안진은 딜로이트의 글로벌 네트웍을 십분 활용해 세계 각국의 이전가격세제를 검토한 끝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상가격에 의한 과세조정에는 감액조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결국 안진은 "과세관청은 국외특수관계자의 거래가격이 정상가격과 다른 경우에는 과세소득을 재계산할 수 있다'는 관련 법 조항은 과세관청이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재량이 아닌 의무사항"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펼쳤다.
현행 법 규정의 문리해석에 충실하더라도 과세당국은 특수관계자간 거래가격이 정상가격에 미달하거나 초과하는 경우에 과세조정을 할 수 있으므로 감액조정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안진의 주장.
결국 안진은 이 같은 논리를 기획재정부 세제실에 전달, 지난 2008년 9월 "이전가격 증액 뿐만 아니라 감액경정도 가능하다"는 최초의 해석을 받아 냈다.
이전가격 세제는 조세회피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거래에 있어 과세중립성 유지가 목적이므로 해외로 소득을 이전한 경우뿐만 아니라 해외로부터 소득을 이전받은 경우에도 이전가격세제 적용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것.
이 유권해석을 기초로 조세심판원은 지난해 "전반기 2개 연도에 대해 이전가격 증액결정만을 한 것은 잘못이며, 후반기 2개 연도의 감액경정까지 고려해 관련 세액이 경정되어야 한다"고 결정, 회사측은 약100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환급 받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당시 이전가격과 관련된 한국발 글로벌 사례로 해외에 대대적으로 소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