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정부가 집권 4년차에 들어갔다. 취임 3돌인 지난 25일 이대통령은 별도의 기념행사를 갖지 않고 월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3년 전 취임 당시의 '초심'(初心)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 특강연사로 초청받은 송호근 교수(서울대)는 생생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들을 수 있도록 정보가 흐르게 하라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문했다고 들린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이다.
집권 3주년을 맞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MB정부가 국정운영에서 국민여론을 반영하고있다는 응답은 34%에 불과했다. 63.3%가 매우 반영을 않거나 잘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금 대통령선거를 다시 한다면 69%가 MB를 찍지 않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500만 표 이상의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CEO 대통령'이 집권 3년 만에 국민과는 소통을 잘 않는 '불통(不通)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불통의 가장 큰 원인은 'CEO형 리더십' 그 자체에 있어 보인다. MB는 스스로 '경제 대통령'을 표방했고 유권자들은 현대건설 CEO와 서울시장으로 이어져 온 그의 성공신화를 떠올리며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경제만큼은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국가는 기업이 아니며, 국가경영은 기업경영과 엄연히 구분된다.
기업경영은 성과를 중시한다. 과정보다는 결과와 실적이 우선이다. 그러나 국정운영은 과정이 중요하고, 단번에 목표에 이르지는 못해도 합의를 이루어 '제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의 중시가 '절차적 민주주의'이고, 이해당사자들과의 폭넓은 소통을 통한 충분한 의견 수렴이 민주주의 국정운영의 요체다.
'기업마인드'는 국정운영의 효율을 높여주는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다. MB는 과거 자신의 성공신화에 따른 과도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추진력과 효율성을 최고덕목 삼아 국정운영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의견을 달리하는 국민들과의 소통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국민은 기업체사원이 아니며 국가지도자의 덕목은 추진력과 효율성을 넘어선다. 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들이 대통령이나 총리로 별반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CEO형 리더십이 국가경영에서 갖는 이 같은 한계 때문이다.
게다가 MB의 패쇄적인 인사스타일이 상하 소통을 가로막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쓰지 않고, 한번 쓴 사람은 여간해서 버리지 않으며, 도덕적 흠결이 있어도 일만 잘하면 곁에 오래 두는 용인(用人)술은 효율과 편익을 중시하는 사기업 총수들의 인사스타일이다.
국정운영에서는 직접 잘못한 것이 없어도 도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있고, 분위기쇄신을 위해, 또 정치적 희생양으로 교체해야 할 때도 있다. 자기사람만 찾아 쓰지 말고 남의 사람도 중용하며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융통성을 발휘했어야 했다. MB는 집권 3년 내내 자신을 밀어 준 지지 세력에 안주하며 불통을 자초했다.
국정운영은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한걸음이라도 제대로 가는 것이 국가적 성공의 지름길이다. 선진국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엑스트라 마일'(extra mile)을 간다'는 표현이 있다. 주요 국가적 현안을 놓고 정치세력이나 이해집단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정부가 독단으로 밀어 붙이지 않고 목표를 '몇 마일 더 돌아서' 가듯 합의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정책적 인내와 노력을 말한다.
4대강사업과 세종시 수정안, 미디어법 할 것 없이 주요 국책사업이나 과제들은 국민설득이나 충분한 의견수렴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돼 독선과 독재라는 반발을 불러왔다.
MB는 경제대통령을 자처하며 '여의도정치'를 멀리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당정청과의 관계에서도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인식은 바닥에 배어있다. '영수회담'으로 불리는 야당대표와의 만남은 지난 3년간 1회, 국회연설도 딱 한번이었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치가 잘 되어야하고, 경제살리기 그 자체가 넓은 의미의 정치다. 대한민국이 선진화되고, 크게 발전하려면 국민의 에너지가 한 데 모아져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소통을 통한 국민화합이 필수적이다. 지역, 계층, 이념적으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국민적 역량이 결집될 리 없다. 국민에게 질 줄 알고, '지면서도 이기는 정치'가 아쉽다.
MB는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국정에 매진해왔다. 금융위기를 남보다 빨리 극복하고 수출의 지속적 신장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G20 서울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등등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치적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지도자로서 국민들에게 믿음과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진력과 효율성을 넘어 소통과 감성, 가슴으로 느껴지는 공감의 정치가 없다는 얘기다. 재래시장에 나가 서민들과 형식적으로 악수하거나 일방적인 라디오연설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화답하는 진정한 쌍방형 소통으로 '불통'을 극복해야한다.
물가급등과 전세대란으로 서민들은 경제가 나아졌다는 것을 피부로 못 느끼고 있다. 국민대다수는 MB정부 들어 사회양극화가 이전보다 심해졌다고 느끼고 있고,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가장 혜택 받는 계층은 부유층으로 믿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과의 소통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친서민'과 '공정사회'는 구호에서 맴돌 뿐이다.
국민과의 소통부재에는 주류언론의 책임도 빼놓을 수가 없다. 국가적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언론이 부단히 의제를 설정하고 공론장을 만들어 여야 간, 대통령과 국민 간 소통에 매개역할을 했어야했다.
메이저 신문들의 경우 숙원사업인 종합편성채널 허가를 받아낼 동안 전략적으로 정부의 핵심과제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을 자제한 측면도 있다. 결과적으로 MB를 도와준 것이 아니고 MB를 '불통'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꼴이 됐다.
집권 4년차 MB의 국정과제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당면한 민생문제를 풀어나가면서 경제성장 기조를 유지해야하고 남북관계도 전환점을 마련해야한다. 집권후반기 레임덕 (권력누수) 차단도 핵심과제다.
이 모두는 포용력을 갖고 각계 여론을 부단히 수렴하며 국가적 지혜를 모으는 '열린 대통령'의 면모를 보일 때 가능하다. 되지도 않을 개헌에 매달리거나, 정권 재창출에 집착해 무리수를 둘 경우 국민의 마음과는 더 더욱 멀어질 뿐이다.
구제역 사태는 '대한민국 수준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느냐' 는 자괴감을 우리 모두에게 안기고 있다. 구제역 대응 실패에 여태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없을 정도로 정부당국은 무감각하다. 대통령이 청와대기자들과 한가롭게 산행하는 모습을 구제역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전국의 축산 농가들은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았을까.
백 마디 라디오연설이나 '친서민' 구호보다 고통을 나누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소통에는 백배 소중하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마음가짐이 다름 아닌 3년 전 취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