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매출 6만원이 영세사업자 기준, "너무 낮다" 하소연
가전·가구 재활용업체도 매입세액공제 해 달라
"독일식 가업상속 감면제도 도입해야" 주장도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처음으로 찾은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영세사업자 기준을 확대해 달라는 건의부터 폐가전 재활용업체의 매입세액공제를 허용해 달라는 내용까지 공무원들이 현장을 찾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을 법한 미시적인 건의사항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정부는 매년 세제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납세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나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같은 기업 단체들로부터 세제와 관련한 건의사항들을 서면으로 제출 받아왔지만, 올해부터는 정부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 간담회를 열고,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15일 재정부 세제실 직원들이 첫 번 째로 찾은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2시간여의 짧은 시간동안 적지 않은 건의사항이 표출됐다. 영세사업자에서부터 중소상공인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한국도시락식품공업협동조합의 김호균 이사장은 "도시락 업체는 같은 음식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체임에도 좀 더 많은 양을 생산해서 운반하는 차이밖에 없는데, 일반 음식업의 네 배에 달하는 부가가치세를 부담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현재 음식업은 개인사업자의 경우 8/108, 법인사업자는 6/106의 의제매입세액공제율을 적용받고 있지만, 도시락 업체는 제조업 등 기타업종으로 분류되어 2/102의 공제율 밖에 적용받지 못하고 있어 과세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장은 "식사용 조리식품을 제조하다보니 쌀이나 육류, 수산물 등 면세품들이 많아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함이 있다"며 "매출에 비해서 부가세부담이 크다보니 일부 사업자는 의제매입세액공제물품보다 과세물품 자료를 대신해서 속이는 경우까지 있다. 이것을 2004년부터 건의했지만 대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가전·가구 등 생활용품 재활용 사업자에 대한 매입세액공제 적용 요구도 나왔다.
한국생활용품재활용협동조합 남종우 이사장은 "폐건전지나 중고자동차 등의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매입세액공제를 허용하고 있지만,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 대형폐기물 수집업체에게는 이것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매입세액공제 적용을 요청했다.
남 이사장은 "대형폐기물은 수거도 어렵고, 수거한다고 하더라도 요즘은 비용을 들여서 수거하거나 오히려 쓰레기까지 가져가라는 경우가 많고, 현금거래만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매입자료를 제시하기가 어렵다"며 "구조적으로 매입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서 조세특례를 부여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간이과세자 범위조정과 생계형 자영업자의 면세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건의도 나왔다.
한국음식업중앙회 이정환 사무총장은 "지난해에만 5만6000개의 일반음식점이 생겼고, 4만7000개가 문을 닫았다. 재료값이 급등했지만 곧바로 음식값에 반영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도 일반과세자로 분류되어 세금부담이 가중되는 영세음식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어 "간이과세자 기준인 연 매출액 4800만원을 일매출로 환산하면 하루에 13만여원의 매출이 기준이 되는데, 이 기준으로는 임대료조차 내기 어렵다"며 "간이과세자 범위를 4800만원 이하에서 연 1억원 이하로 상향조정하고 올해말에 종료되는 음식업종 과세특례(부가가치율 30% 적용)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 "간이과세자 중 6개월 매출 1200만원 미만인 영세사업자는 생계형으로 보고 세금납부를 면제해 주고 있는데 이는 하루 매출 6만6000원 정도 금액으로 지나치게 금액이 낮다"며 "근로장려세제도 연소득 1700만원 미만 가구에 대해 80만원까지 지원해주고 있는 점을 비춰보면 기준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고급업종이라는 인식 때문에 상대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한국모피제품공업협동조합의 조수형 전무는 "모피가 외부에서는 화려하게 보이고, 특정인들만 입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 제조업체들은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라며 "모피의류도 이제는 거의 대중화돼서 중산층 여성들도 거의 한 벌씩 갖고 있을 정도인데 아직도 모피에는 개별소비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무는 "모피는 원자재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요즘은 중국, 러시아 등의 소비증가로 원자재가가 30% 정도 인상됐지만, 국내에서는 할인경쟁으로 원자재가 인상분을 반영도 못하고 있고, 개별소비세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업계가 부담하는 실정"이라며 "정책적으로 개별소비세 폐지나 과세기준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분야에서도 현장이 아니면 듣기 어려운 건의사항이 쏟아졌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김정환 실장은 "인지세법을 보면 모든 계약서류에 인지세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는데, 2인 이상이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하면 연대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대형종합건설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전문건설업체들이 관행적으로 인지세 부담을 떠 안고 있다는 점"이라고 털어놨다.
김 실장은 "연대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보니 하도급 업체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전체 계약이 그렇게 진행된다고 볼 때 연간 100억원을 전문건설업자들이 부담하는 것"이라며 "연대책임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소기업을 대표한 중소기업중앙회 차원에서의 건의도 쏟아졌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유현 본부장은 "산업개발이 시작된 지 50년이 됐고, 60세 이상의 CEO가 전체의 20% 가량에 이른다. 가업승계기업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대부분 독일식 가업승계 상속감면제도 도입을 원하고 있다"고 가업상속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조 본부장은 또 "문화접대비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이직률도 '0'에 가깝다고 한다. 보통 문화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직원들이 거의 떠나지 않고 장기 근속한다"고 문화접대비의 일몰제 폐지와 적용기준 완화 등을 건의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유현섭 문화기획팀장도 "문화접대비가 2008년도에 도입됐지만 적용하고 있는 기업은 극히 적다. 이는 제도의 유인효과가 적기 때문"이라며 "특례적용 접대비 한도기준인 3% 제한선을 폐지하고, 문화접대비 한도액도 현행 10%에서 30%선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중소기업중앙회 소한섭 정책총괄실장은 "정부의 의지로 봤을 때 올해 말에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꼭 폐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임투공제는 중소기업들도 많이 이용하는 만큼, 연장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약 폐지한다면 대신 중소기업투자세액공제의 공제율을 상향조정하는 보완책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 세제실을 대표해 참석한 김낙회 조세정책관은 "오늘 직접 청취한 내용들이 곧바로 정책에 반영되기는 어렵겠지만, 여러 가지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다. 조금씩, 조금씩 제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