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이라는 그럴듯한 간판 뒤에 숨겨졌던, 대한민국 사회의 뿌리깊은 병폐는 검찰수사와 함께 만천하에 드러났고, 국민들을 '열' 받게 만들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는, 또 다른 무소불위 권력기관인 감사원도 덜미가 잡혔다. 은진수 前감사위원이 문제가 된 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로비루트'는 살아있는 권력 핵심 인사들은 물론, 전 정권의 고위인사까지 뻗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좀처럼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 않은 복마전(伏魔殿)은 상당기간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국세청도 '불똥'을 맞았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의혹 수사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로비몸통' 역할을 한 부산저축은행 그룹 김 양 부회장이 회사 대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에게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거액의 돈(1억5000만원)을 지급했다는 진술이 검찰수사 과정에서 나온 것.
부산저축은행이 경기도 용인에 타인 명의로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했지만 명의를 빌려준 전남 영광 출신 이 모씨가 사망하면서 40억원 상당의 토지소유권 분쟁이 생겼고 이에 대한 서광주세무서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박 회장이 김 부회장의 부탁을 받고 국세청을 상대로 무마 로비를 벌여 세금을 대폭 깎았다는 것이 의혹의 요체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국세청은 펄쩍 뛰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명의대여자인 이 씨는 부산저축은행 직원 박 모씨의 가까운 지인으로 사망전 경기도 임야를 당시 부산저축은행 대표를 맡고 있던 A씨에게 양도한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광주세무서는 이 씨가 사망한 시점, 이 씨 명의로 상당액의 재산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유족이 상속세 신고를 할 것으로 판단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신고가 이뤄지지 않자 상속세 조사에 착수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이 씨가 명의대여자라는 사실과 해당 토지에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 과세실익이 없다는 판단 하에 과세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 관계자는 "쟁점 토지는 상속세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서광주세무서의 상속세 조사는 이 씨의 나머지 재산에 대한 것이었을 뿐, 세무조사 무마로비는 없었다. 최근(23일) 검찰에서 이를 확인해 간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세청 내부적으로도 40억원 상당의 토지소유권 상속세 조사를 지방국세청도 아닌 일선 세무서에서 직접 조사했을리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오히려 국세청 일각에서는 검찰이 세무조사 무마의혹을 흘리는 것은(?)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을 붙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정치적 해석까지 내놓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박 회장이 경기도 시흥의 영각사 납골당 사업, 전남 신안군 리조트 사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 천억원의 불법대출에 관여한 혐의가 포착됐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확보를 위해 세무조사 무마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해석이다.
김 부회장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1억5000만원의 거액은, 두 사람간 '배달사고' 아니겠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진위여부를 떠나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이 문제에 작은 부분이나마 연루된다는 것은 국세청으로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이나 언론이 '국세청' 이라는 기관명을 언급한 것에 대해 민감한 반응들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세청이 감사관실을 동원, 당시 세무조사 과정을 재구성하고 정말 로비시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자체 파악하고 있는 것도 자라가 아닌 솥뚜껑 때문에 놀라고 싶지 않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