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무역사의 주력 수입물품은 다소 보기에 민망한(?) 성인용 '자위기구'였습니다. 아직까지는 판매망이 은밀하게 형성되어 있지만, 수요도 꽤 창출되는 등 A무역사는 해외에서 제조된 고품질의 자위기구를 수입·판매해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5월, 남성 및 여성용 자위기구 일정량을 수입하면서 관세청에 수입통관을 신청했는데 관세청이 통관보류를 내린 것입니다.
A무역사는 "통관보류처분은 말이 안 된다"며 관세청에 따졌습니다. 하지만 관세청은 요지부동. 결국 A무역사는 조세심판원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 민망한 싸움은 심판원에 의해 승패가 갈리게 됐습니다.
□ '성적 수치심'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 = 이 싸움의 '분수령'은 성적 수치심에 대한 A무역사와 관세청의 판단 중 어느 쪽이 맞느냐를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A무역사의 입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A무역사는 심판청구를 제기하면서 자위기구의 모양까지 그럴듯하게 서술하며, "이 기구 자체가 성욕을 자극, 흥분, 만족시키게 하는 물건이 아니다"라며 "일반인의 정상적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같은 자위기구는 성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보조해 성관련 사회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보건 측면에서는 순기능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견 일리가 가는 주장이었지만, 관세청의 입장은 정반대였습니다.
관세청은 "음란한 물건은 물품의 외형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케 하는 물건으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물건 자체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관세청은 "쟁점물품들은 내외부가 남녀의 성기를 연상시키고 있어 성적 흥분을 야기하고 비정상적인 자위행위를 위한 물품으로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음란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심판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 심판원의 결정은 A무역사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심판원은 "자위행위 자체를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보기 어렵고, 정상적 부부관계에서도 성행위시 보조기구로 사용되는 등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특히 장애인·노년층의 성문제 해결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쟁점물품에 대한 시대적 수요와 개인의 행복추구권 등 순기능이 있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심판원은 "자위기구가 곧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 해 수입통관을 보류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며 "수입통관보류 처분은 부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소 거창한 단어를 써가며 내린 결론이지만, 알아듣기 쉽게 요약하면 "시대와 가치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잣대로 판단한 관세청의 결정은 잘못이다"가 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틀린 말이 결코 아닙니다. 시대도 변했고, 사람들이 성에 대한 관념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죠. 부모님 세대야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며 혀를 끌끌 차겠지만, 이미 변해버린 성 관념과 문화를 대세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관세청은 행정에 있어서의 고리타분한 원칙론에 변화를 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이 유사한 사건에 대해 '통관보류처분은 위법하다'라는 판결까지 내렸는데도 여전히 기존 시각을 벗어 던지지 않는 것은 고집을 넘어, 국민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란 사실을 직시했으면 합니다.
(참고심판례 : 조심2012관0094)
